[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550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숨바꼭질’(감독 허정)은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섬세한 연출력으로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 흥행의 일등공신은 몸을 사리지 않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남의 집에 몸을 숨기고 사는 낯선 사람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가장.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숨바꼭질’은 사람이 귀신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영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나 충격적인 반전은 더운 여름, 관객들의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 세 사람의 환상적인 연기 호흡이 빛난 가운데 사건의 핵심키를 쥐고 있는 문정희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하 문정희와의 일문일답.
◇독특한 영화의 소재, 와 닿았나?
실제로 뉴스에 나온 사건을 유튜브를 통해 봤다. 뉴욕 아파트에서 매일 뭐가 없어져서 야간 카메라를 들고 나갔더니, 벽장 위 천장에서 노숙자가 내려오는 거다. 돈도 가져가고, 주인이 나가면 집에 들어온다. 그 집 사람들의 생활 리듬을 알아서 더불어 사는 거다. 물론 피해는 주지 않았지만 그 카메라에 딱 걸렸다. 너무 무섭더라.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도 끔찍하다. 범인들은 미리 호구조사를 한다더라. 자신만 알 수 있는 표식을 남겨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안전하지 않은 거 아닌가
그렇다. 요즘에는 남자 목소리를 내는 어플도 있다고 한다. 택배기사가 방문할 때 어플을 켜면 ‘누구세요?’라고 묻는 남자 목소리가 나온다. 나 역시 누가 오는 게 너무 무섭다. 우리 동네 우체국 아저씨는 친절하게 문자도 보내주고 집 앞에 놔주고 가신다. 지인 중 한 명은 범인이 딴청 하다가 어떤 사람이 문을 여는 순간, 다가가려고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 들어가는 것도 봤다더라.
◇극중 주희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왜 그렇게까지 돼야만 했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혼자서도 많이 생각해봤다. 주희가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경제적으로 충당이 안 되고 험한 생활을 하면서 죄책감 없이 그런 생활을 하게 됐을 거다. 자기 집이라고 요구했던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꿈(내 집 마련)이 컸을 거 같다. 주희를 표현하기 위해 눈을 약간 비대칭으로 찌그려 뜨고 핀이 하나 나가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다. 주희는 어눌하고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콤플렉스도 많은 인물로 자랑거리가 생기면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연가시’에서도, ‘숨바꼭질’에서도 여자로서 쉽지 않은 역할에 도전했다. 아름다운 역할에 대한 열망은 없나?
이런 역할은 오기가 힘들 거 같았다. 미모와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거는 보통의 여자들이 하는 거다. ‘연가시’ 때 지저분하게 나왔는데 또 그래야 하나,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 보는 분들 때문에 고민은 했다. 그렇지만 이 역할에 대한 욕심이 많이 났다. 일부러 뚱뚱하게 보이려고 옷 안에 패딩을 다 넣었다. 가슴부터 배까지 전부 패딩을 한 거다. 물론 나도 예쁜 게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어떤 역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되려 안 된더라. 온 것을 잘하면 그게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연기지도를 도맡았다던데?
아이들이 연기를 하다 막히면 손을 들어서 ‘와주세요, 연기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은 아이들의 연기가 잘 안 풀리면 나를 불렀다. ‘주희 이모 왔다’ 하면 아이들이 덜덜 떤다. 우는 연기를 할 때도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준다.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럴 땐 어떨 거 같아?’라고 물어보면 금세 감정을 따라온다. 호흡을 맞출 때는 때때로 시연을 하기도 했다.
나는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힘들 때 아이들이 긴장을 놓는 꼴을 못 본다. 물론 아직 어리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은 이해한다. 아이들도 똑똑해서 정확하게 요구하면 정확히 알아듣더라. 본인들이 욕심이 많고 너무 잘하고 싶어하더라. 본인들의 감정을 끌어올리면 그 때 칭찬해준다.
◇성격이 워낙 소탈해서 동료들과의 호흡도 좋을 것 같은데?
작품을 같이 한 배우들과는 두루두루 친하다. 이번 현장은 말할 것도 없이 분위기가 좋았다.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게 편한 건 있지만 현장에서 함께 연기를 하면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다 친해진다. 연기 얘기도 하고 서로 근황도 묻고 돌아가는 정보도 묻는다. 최강희 씨와 친한데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리더라. 그냥 내버려뒀다. 내가 열 번 문자하면 한번 대답한다. 그런 스타일인 것을 알고 나니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숨바꼭질’에서 함께 연기한 손현주 오빠는 다른 배우들을 언급하면 싫어한다.(웃음) 질투의 화신이다. 정말이다. 김명민 오빠나 ‘연가시’ 얘기를 하면 하지 말라면서 질투한다. 사실 손현주는 배려심이 너무 많고 멋진 배우다. 내가 ‘손스타’라고 부른다. 배우들이나 스태프들 하나하나 배려해 주는 거 보면 사람들이 괜히 ‘손현주 손현주’ 하는 게 아니다. 정말이지 배울 점이 많다.
◇‘숨바꼭질’이 흥행에 성공할 것을 예상했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너무나 기분이 좋다. 정말 우리 영화를 사랑해주신 관객들과 많은 분들의 힘이 모아져 탄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도 감사하다.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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