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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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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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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장 운학의 화난 마음을 달래놓아야 한다. 그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든 오해를 풀어놓고 볼 일이었다. 그게 적어도 하림이 이곳에 머물 동안 조금이라도 편하게 있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들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하림은 토라진 애인 뒤를 쫒듯 그의 뒤를 놓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말을 걸 기회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운학은 그가 뒤에서 따라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앞만 보며 걸어갈 뿐이었다. 앞만 보며 걸어가는 사람의 등짝에다 대고 말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둑길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마침내 운학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참고 있던 말을 뱉었다.
“그래도 난..... 당신을 믿었어.”
여전히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당신이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 기억하지? 난 당신에게 분명히 말했어. 조심하라고 말이야. 난 당신이 화실 주인 윤아무개랑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지도 않고, 당신이 뭘 하려고 이곳에 왔는지도 알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떨렸다.
“그녀만은 안 돼! 알겠어? 그 여자만은.....!”
그는 비명이라도 지르듯 말했다. 때마침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놓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마치 한 마리 성난 짐승처럼 보였다.

하림은 그 순간, 무언가 변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와 남경희 사이엔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것을 밝혀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장님. 무언가 오해를 하시고 있는가본데.....”
하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잘랐다. 이 순간, 자기야말로 화가 나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짐짓 차분하고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말했다.
“난..... 솔직히 말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오해라구?”
운학이 소리를 질렀다.
“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어! 그녀가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 내겐 마치 어둠 속에 나타난 빛과 같았지. 처음부터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녀는 도도하고 고상하지. 나 같은 놈이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못 올라갈 나무라 하여 바라보지 말라는 법은 없지. 난 늙고 게다가 한쪽 다리도 절어. 멀쩡한 당신들이랑은 다르다는 것도 알아. 난..... 당신들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아는 것도 없어.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울먹이는 듯이 변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그녀는 혼자고, 나도 혼자야. 혼자 사는 늙은 사내가 혼자 사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야? 당신이 이곳에 나타나기 전, 그녀도 분명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어. 그녀의 집 성경공부에 나를 끌어들인 것도 그녀였어. 그녀는 버림 받은 여자야. 겉은 멀쩡해 보여도 가슴 속은 온통 상처투성이 뿐이지.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한 것도 그런 때문이었어. 알고 보면 동정을 받아야할 쪽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야. 그런데 내가 그들의, 그 불쌍한 인간들의, 재산을 노려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이라구? 후후.”
그는 어두운 허공을 향해 자조적인 웃음을 날렸다.
“당신과 하는 이야기 다 들었어. 거짓말이야! 모두 거짓말이라구!”
그는 배신당한 사내의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글. 김영현/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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