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준용 기자, 사진=송재원 기자]블랙 가죽재킷에 스키니, 여기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친 액션까지 선보인 수민은 온 데 간 데 없고, 긴 머리를 가지런히 묶고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녀가 청초하게 앉아있다.
마치 한차례 뜨거운 열병을 앓고 난 뒤 방금 훌훌 털어내고 일어난 듯한 얼굴이다. 배우 남규리에게 JTBC 드라마 ‘무정도시’(극본 유성열, 연출 이정효)는 그런 느낌이다. 많이 사랑했고 많이 앓았고 기분 좋게 떠나보냈다.
“전 전작들을 통해 어리면서 상큼 발랄하고, 늘 사랑받는 캐릭터를 맡았어요. 하지만 이번 ‘무정도시’에서 수민 역은 그동안 선보였던 캐릭터와는 달랐죠. 이번 캐릭터는 처음부터 불쌍하게 설정됐어요. 보육원 출신에 가족은 아니지만 친 언니 같은 사람을 잃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역할이죠. 액션신도 소화했고요. 내안에 다른 모습도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린 셈이어서 이번 작품은 정말 제게 소중해요.”
남규리가 연기한 수민 역은 언더커버로 억울하게 희생된 언니의 복수를 꿈꾸며 경찰이 돼 마약조직에 잠입해 기구한 사랑과 만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번 역을 통해 복수에 불타오르고 기구한 사랑에 절규하는 등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실제로 남규리는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촬영한 계절이 여름인데다 액션신을 소화하다보니 3~4kg 감량됐다.
“평소 ‘아이리스’ 같은 액션물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도 흥미가 많았죠. 근데 확실히 보는 입장과 직접 해보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똑같은 연기를 하는 것임에도 액션신을 소화하니깐 멍도 많이 들고 병원가서 엑스레이 찍을 정도로 다쳤죠. 이쪽 멍이 없어지면 반대쪽이 금세 생겨서 화장품으로 멍 자국을 가리기 바빴어요. 바로 액션신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좀 다른 장르의 작품을 하다가 다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하.”
‘무정도시’는 한국 드라마계에서 느와르(범죄·폭력의 세계를 그리는 장르)라는 장르의 저변을 넓힌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 받았다. 국내 최초 정통 느와르인 이번 작품이 남규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저 말고도 이번 드라마에 참여했던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공통되게 느낄 생각이겠지만.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언젠가 다른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활동할 ‘무정도시’의 주역들이 굉장히 자랑스러울 것 같아요. 저에게 여러모로 가르침과 행복을 안겼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단지 느와르란 장르를 해서라기 보단, 드라마 자체가 자유롭게 표현되고 여느 영화 못지않은 작품으로 나오게 돼 정말 좋더라고요. 공중파에서 방영됐으면, 칼이나 총을 사용함에 있어 제약이 많이 따랐겠죠. 또한 느와르 느낌이 더 부각된 세피아 톤의 화면도 색달랐던 것 같아요. ‘무정도시’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회자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2006년 2월 3인조 여성 음악 그룹 씨야의 리더이자 리드보컬로 데뷔한 남규리는 2009년 팀에서 탈퇴하기까지 많은 히트곡과 드라마 O.S.T를 남기며 가수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연기자로 변신, 영화 ‘고사:피의 중간고사’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49일’ ‘해운대 연인들’ ‘울랄라 부부’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가수활동 보단 배우활동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있지만, 아직 노래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최근에도 남규리는 신곡 ‘처음 본 남자 그리고 여자’를 통해 싱어송라이터 이결과 듀엣으로 호흡을 맞췄다. 이결, 양승욱이 작사, 작곡을 맡은 이 곡은 감성적인 멜로디와 남규리의 서정적인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사랑을 막 시작하려는 남녀의 설렘과 불안함을 표현한 가사가 이결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만나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향후 가수활동 재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당장 가수활동을 병행하기보단 당분간은 배우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무정도시’를 통해 연기에 대한 재미를 알게됐어요. 함께 연기한 (김)유미 언니도 저에게 ‘너 이제 연기력이 더 발전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연기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더라고요. 근데 어느 때가 왔다 싶을 땐 노래를 통해서 음악적 성숙함을 보였으면 해요. 전 아직도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어요. 홍대도 몰래가서 공연도 보고 즐기거든요. 노래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무척 좋아해요.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 도전을 멈추기 않겠다는 남규리.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미소에서 앞으로의 성공 가능성이 엿보였다.
최준용 기자 cjy@
사진=송재원 기자 s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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