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영준 기자]미국에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수퍼 히어로 대접을 받고 있는 크리스 에반스가 180도 다른 모습으로 한국 관객들을 찾았다. 미남 배우 계보를 잇고 있는 그가 봉준호 감독을 만나 다소 '꾀죄죄한' 모습의 반란의 지도자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멋진 모습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크리스 에반스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봉준호 감독도 함께 했다. 한국 첫 방문이었던 그는 입국 당시 한국 팬들의 뜨거운 환대에 깜짝 놀랐지만, 이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듯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설국열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봉준호 감독은 세계 최고"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크리스 에반스, 봉준호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 틸다 스윈튼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 (크리스 에반스) 매 장면마다, 또 매 촬영마다 잘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 정도 배우로서의 위치라면 간혹 감독의 지시를 들을 의향이 없는 분들이 많은데, 틸다 스윈튼은 첫 영화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감독의 말을 잘 들었다. 정말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다.
- (봉준호)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의 화학작용이 제일 세게 올랐던 장면이 취조실 장면이다. 크리스가 틸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취조하는 장면인데, 옆에서 나도 볼만 했다. 그때 크리스의 표정 연기를 보면서 틸다가 감탄했다. 크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는 장면의 연속이었는데, 보는 나는 즐거웠다. 크게 디렉팅 할 것이 없었다.
▲ 독백 장면을 위해 혼자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무슨 생각을 했나?
- (크리스 에반스) 정확히 몇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래 있었다. 17년이나 기차에서 생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혼자 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촬영할 때는 백여명의 스태프들이 있고, 다른 배우들과 의상 카메라 조명 스태프들이 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걸 배제한 기차라는 공간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싶었다. 워낙 더러운 곳이기도 했고. 여기는 영화 세트장이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 오디션을 보기 위해 직접 방문했다고 들었다. 혹시 캐스팅을 거절 당할 수 있다는 걱정은 없었는지?
- (크리스 에반스) 물론 그랬다. 그건 늘 있는 걱정이다. 내가 아는 모든 배우들은 훌륭한 감독님과 일하기 원한다. 봉준호 감독은 세계 최고의 감독이다. 감독님을 만난 후에 다른 배우들은 감독님의 다른 영화를 못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만 감독님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봉준호) 우리가 오히려 크리스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크립트의 좋은 점을 최대한 설명하려 노력했다. 커티스라는 캐릭터의 장점을 설득하고 또 어필하려 노력했다. 우리 쪽에서도 크리스를 설득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다.
▲ '설국열차'가 미국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 (크리스 에반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반응이 다를 것이다. 생각 있는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폭발시키고 싸우는 영화가 아니라 깊이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진정한 예술영화라 할 수 있다. 내 지인들은 이런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 '설국열차'가 '캡틴 아메리카'나 '어벤져스'를 본 관객들에게는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까?
- (봉준호) 크리스는 이미 미국에서 스타이이다. 아마 미국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 긴 독백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장면이 잘 부각된다면 미국 관객들도 크리스의 연기에 대해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크리스는 '캡틴 아메리카'나 '어벤져스' 외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설국열차'가 새로운 지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어떤 느낌으로 접근했나?
- (크리스 에반스) 말로 깔끔하게 설명 드리기 어렵다. 그 장면 같은 경우 캐릭터가 느낀 감정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 느낀 죄책감 수치심을 떠올렸다. 그런 개인적은 생각들을 많이 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 어느 정도 치유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정신적 소비가 요구되는 장면이었다.
장영준 기자 sta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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