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2013 동아시아연맹(EAFF) 축구선수권 한일전에서 불거진 '붉은 악마'의 현수막 논란이 결국 정치 분쟁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다이니 쿠니야 일본축구협회장은 30일 일본 '니칸스포츠' 등을 통해 "한국 응원단이 역사 문제로 일본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내건 점에 대해 주최 측인 동아시아축구연맹에 항의문을 제출했다"라고 보도했다.
사건의 발단은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대회 남자부 최종전에서 비롯된다. 한국 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는 관중석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글귀를 적은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초상이 새겨진 대형 걸개도 등장했다.
이를 본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대한축구협회와 경비 용역 요원들은 후반 시작 전 현수막을 강제 철거했다. 격분한 붉은 악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한축구협회가 위 걸개를 지속적으로 강제 철거하기에 더 이상 대표팀을 응원할 수 없습니다'란 입장을 밝힌 뒤 후반전 응원을 보이콧했다.
지지통신 등 일본 매체들은 즉각 "해당 문구가 한일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일본을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응원 시 정치적 주장을 금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위반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라고 이의제기에 나섰다. 급기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9일 "(이번 사태는) 극도로 유감"이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FIFA 규약에 근거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는 "일본이 경기장에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긴 했으나 이번 일과 관련한 공식 항의는 아직 없었다"며 "향후 추이를 지켜본 뒤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불필요한 대응을 자제하겠단 의도가 엿보이나 또 다른 소모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양국은 이미 지난해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박종우(부산)의 '독도 세리머니'로 첨예하게 대립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일본 측의 항의가 정치 논쟁으로 번져 대한축구협회와 선수 본인이 6개월 간 FIFA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상대로 해명에 나서는 등 상당한 노력을 할애해야 했다.
다이니 회장은 "이번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터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런 사태가 발생해 유감"이라며 "동아시아 축구연맹의 철저한 조사와 대응을 촉구한다"라고 말했다.
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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