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박근혜정부가 발표한 지방공약 이행계획, 이른바 지방공약가계부의 후폭풍이 심상치않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당시에 내건 지방공약을 예의주시해왔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으로서 공약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집권은 하지 못했지만 지방공약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견제와 감시를 함으로써 선명한 야당, 강한 야당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양당 모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지만 목적지는 같다. 내년 지방선거다.
새누리당은 총선과 대선의 연승 분위기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가겠다는 바람이고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의 연전연패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뚜껑이 열리자 여야 모두 장탄식이 이어졌다. 지방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조달하려다보니 사업성 경제성이 낮은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로 걸려내고 민간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BTL사업확대라는 카드가 나왔다. '예타'를 하게 되면 경제성만 따지게 되니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 낙후지역, 열세지역에 대한 배려와 안배가 힘들어진다. 민간투자를 활성화하자면 민간에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줘야하니 나중에 다시 세금이 투입되는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결과가 된다.
8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여당의 불만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왔다. 황우여 대표는 "새누리당이 대선과정에서 약속한 중앙의 민생공약, 복지공약, 또 지역에 가서 약속한 지역공약 모두 천금 같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당은 공약의 등가성을 잊지 않고 공약이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정된 재원으로 공약의 선후, 완급,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면서 "여야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 정부당국과 전문가와 함께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피면서 적극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가 공약이행의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강원과 호남을 대표한 최고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기호 최고위원은 각종 지역사업 무산 등과 관련된 언론보도를 소개하며 "대통령께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특히 지방에 대해 홀대하는 모습이 명확히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지방 사람들이 활력을 찾지 못한다면 희망을 갖지 못하고, 이것은 바로 국가가 활력을 잃는 것이다"면서 "지방 SOC사업은 천덕꾸러기가 아니며 지방 SOC사업을 일자리를 만들고 돈이 돌게 하는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SOC에 대해 떡 하나 더 주는 생색내기용, 면피용이 아닌 지역균형발전의 틀에서 국토의 새로운 대동맥을 잇는다는 개념으로 추진해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특히 "천편일률적인 예비타당성만 강조한다면 이것은 결국 또 다른 정권의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며 "따라서 경제성만 따지지 말고, 교통 환경의 미래 가치를 생각해서 사업을 추진해주시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유수택 최고위원은 "재원조달 문제 등을 비롯해 고심한 흔적과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원론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서 과연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려는 것인지, 그저 시늉만 내고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닌지 솔직히 조금 어정쩡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현지 반응도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당이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당내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즉각 가동해 합리적이면서도 전향적 방안을 정부 측에 적극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당의 강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일단 표가 되면 무조건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박근혜식 '손바닥 포퓰리즘'의 시작이자 대선공약 용도폐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민간투자를 이용하는 BTL(Build-Transfer-Lease)사업이다. 이 사업은 민간투자사업자가 자신의 자본으로 철도, 도로, 군사시설 등의 건설을 완료한 이후, 정부가 사업자에게 임대료를 지급해 사업비를 보전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사업수익성이 낮아 BTL사업 참여율도 저조하고, 국비로 했을 경우의 사업비에 비해 정부가 민간사업자에 지불하는 임대료총액이 월등히 상승하는 등 문제점이 매우 심각해 용도폐기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정책위는 사회간접자본(SOC) 등의 분야는 민간자본 유치 등을 적극 활용한다고 하나, 민자사업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민자시장이 빈사상태인 상황에서 민간투자 확대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새정부가 5년간 SOC 예산 12조원을 삭감해 중앙공약 이행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대선 지역공약의 상당수는 도로, 철도 등 SOC 사업인 바, 중앙과 지역공약 이행 계획이 서로 상충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원대책 없이 124조원에 달하는 지역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은 차기 정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전면적인 예비타당성 조사가 필요한 신규사업(96개사업, 84조원)의 경우, 추진절차상(예타→기본계획수립→기본설계→실시설계→착공) 재원 부담은 현정부 보다는 차기정부가 부담을 더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을 맡았던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국비지원은 최소화하고 BTL사업, 지방비부담 등으로 정부가 지방공약을 이행하겠다는 것은 재원부담을 국민, 차기정부, 지방정부에 전가하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정책위의장)은 "민자사업자가 사업을 추진할 때 일정 부분 수익을 보장해서 문제가 됐던 최소수입보장(MRG)을 민자사업자가 투자한 원금을 보장해주는 비용보전(CC) 제도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경제여건상 민간건설사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더 많은 수익을 더 오래 보장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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