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과 높은 습도로 후텁지근해지며 불쾌지수가 높아진 요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배어나는 날씨를 오히려 고마워하는 이들이 있다.
건설현장에서 고강도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건설현장이 오랫동안 멈추는 바람에 일을 나가지 못했던 이들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남다르다고 한다. 이런 건설근로자들에게 노(勞)와 사(使), 민(民)과 관(官)의 상생협력 작품인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제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근로자가 상당 기간(통상 1년 이상) 근속하고 퇴직하는 경우 사용자가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퇴직급여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직종이 있다. 바로 건설근로자들이다.
생산과정에서 공정에 따라 각기 다른 노동력 투입이 필요한 건설업은 건설근로자들을 비정규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건설기업이 모든 근로자들을 고용할 경우 업황에 따라 증감하는 일감에 적절히 인력을 맞추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건설근로자는 1년 넘게 동일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총근로일을 누계하면 정규직보다 못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따라서 건설근로자들은 평생을 열악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도 가난한 노후를 맞게 된다. 이는 고용불안, 장시간 육체노동, 저임금, 대표적인 3D 업종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건설현장을 기피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또한 건설근로자의 고령화와 숙련저하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도입된 것이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제도이다. 이 제도의 요지는 사업주가 퇴직공제에 가입하고 공제부금을 납부하면 근로자가 사업장 간 이동이 잦더라도 매 근로일수를 축적하여 일정 일수에 달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98년부터 시행한 이 제도는 당시 정규직 중심이었던 정부의 노동 및 복지 정책이 비정규직(일용직)에게도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 준 획기적인 시도였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건설근로자에 대한 최초의 맞춤형 복지제도였다. 요즘 유행하는 창조와 창의의 성공적인 작품을 우리나라는 이미 16년 전에 만들었던 것이다.
이 제도를 담고 있는 것이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다. 이 법에 의해 건설근로자공제회가 퇴직공제제도를 운영하는 책임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공제회는 그동안 퇴직공제사업 이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펼쳐 왔다. 건설근로자를 위한 취업지원, 교육훈련, 수요자 중심의 복지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건설산업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몸살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에서 끝없는 추락의 고통 속에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수주액이 2005년 이후 8년 만에 100조원을 밑돌 것으로 예측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 5년간 12만6000명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은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건설근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6년 전 건설근로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던 '퇴직공제제도'를 만들 당시 노와 사, 관과 민이 협력했듯이 이제 다시 한번 상생협력이 시급하다. 40대 이상이 8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점점 고령화되는 건설근로자들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으로서 일정 수준의 소득은 물론이고 가족 건강과 자녀교육,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건전한 역할 등 책임질 일이 많다.
점점 악화되는 건설산업의 고용환경 속에 생존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건설근로자. 그들을 위한 보다 촘촘한 안전망이 되는 창조적ㆍ창의적인 작품을 기다린다.
이진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