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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7장 총소리(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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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 - 7장 총소리(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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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영현 기자] 총소리가 지나간 뒤라 그런지 저수지 주변은 더욱 괴괴하였고, 음울했다. 하늘 한쪽에 비스듬히 걸린 날카로운 초승달마저 귀기가 느껴졌다. 사내의 오토바이가 떠나고 난 뒤에도 하림은 덤불 뒤에서 한동안 그렇게 웅크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자기를 노려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밤기운 때문일까, 몸이 더 떨렸다.

‘분명, 그 사내다!’
하림은 속으로 다시 한번 나지막이 외쳤다. 얼마 전 하림의 화실로 펌프를 고치러 와서 이장이랑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갔던 그 염소수염의 사내. 어둠 속이었지만 커다란 키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볼, 푹 꺼진 눈자위.... 틀림없이 그 사내였다.
‘그가 왜.....?’
하림의 머리 속에선 아까부터 똑같은 질문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 바쁘게 돌고 있었다. 그날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말을 꺼냈었다.
“근데 개 죽은 것은 어찌됐어? 누가 쐈는지 알아냈어?”
이장 운학이 머리를 흔들며 그후에도 연쇄적으로 개들이 죽어나가고 있다고 하자,
“그래? 또 엽총에 맞았어?”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었다. 그리고 또,
“응. 이번에도 둘 다 대가리에 엽총을 맞고 죽었어. 어떤 인간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미친놈이 아니구서야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지.”
하고 이장이 치를 떨듯이 대답하자,
“요즘 세상에 미친 놈이 한둘이어야지. 멀쩡한 정신 가지고 사는 놈 보기가 더 어려워. 그건 그렇구, 근데 이층집 또라이 영감이 한 짓이란 이야기가 있던데.....”
하고 떠보듯이 말했었다. 그리곤 마악 데워지기 시작한 청량한 대기 속으로 푸른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 그 말을 했던 사내가 바로 그였다. 낮에 본 그의 인상은 약간 험악하긴 했지만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태연한 얼굴 속에 악마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흉악한 살인범도 겉보기론 평범해 보이는 경우가 보통이다. 단 육개월에 이십여명의 여자를 끔찍한 방범으로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도 동네 이웃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청년, 심지어는 예의 바르고 수줍음 잘 타는 그런 보통의 청년으로 알고 지냈다고 한다. 악마는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그대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독재자의 영혼 속에 숨어든 악마는 한 손으론 살인을 저지르면서, 한 손으론 기도를 올리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철학자 안나 하렌트는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악당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악은 평범하게 우리의 주변에서 일상을 함께 한다. 우리 속에 깃든 악도 마찬가지이다. 일상 생활이나 조직의 논리에 매몰되는 순간, 악은 쉽사리 우리를 점령한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스스로 나태해지는 순간, 우리의 사고가 멈추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차대전 중 아우츠비츠의 수용소에서 대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후, 전후에 남미로 도망갔다 잡힌 아이히만을 접견하고는 그가 너무나 평범한 노인임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왜 잡혀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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