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
박기웅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혹자는 한 번에 ‘아, 그 배우’ 하고 떠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 모 CF에서 ‘맷돌춤’을 추던 청년이라고 하거나, 영화 ‘최종병기 활’의 청나라 왕자 도르곤, ‘각시탈’의 일본인 기무라 슌지라고 설명하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번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그는 완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박기웅은 혼혈 같은 이국적인 외모에 안정된 연기력으로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제 옷 같이 소화해낸다. 특히 그는 남들이 입지 못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배역을 입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아직도 외국에 나가면 현지인으로 오해를 받는다. 비행기에 타면 국내 승무원들이 영어로 말을 걸기도 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색의 눈동자는 크고 선명했고, 코는 외국인 못지않게 높았다. 두상 역시 비범했다. 본인 스스로는 “학교 다닐 때 머리를 짧게 깎은 적이 있는데 별명이 ‘에이리언’이었다”면서 웃었다.
“드라마가 너무 잘 돼서 지금은 일본에 가면 많은 분들이 길에서 알아보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요. 이전에는 일본에 가면 사람들이 아주 당연히 저에게 일본말을 했어요. 20대 초반 광고 촬영을 위해 호주에 간 적이 있는데 승무원이 영어로 말을 시키더라고요. 지금은 되게 한국스러워진 거예요.(웃음)”
박기웅의 ‘혼혈 같음’은 어릴 때 더욱 심했다. 외가가 63빌딩에서 뷔페를 했는데 한 번은 엄마가 그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국제결혼 부부 모임의 관계자가 어린 박기웅을 데리고 있었단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그 얘기가 두고두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 저희 가족이 다 이국적인 외모인 것 같아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가장 한국스럽죠. 유승호를 좀 닮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본 남자 중에 가장 얼굴이 작은 사람이 김수현하고 제 동생이에요. 하하.”
뚜렷한 이목구비와 자신감 넘치고 서글서글한 성격은 학창시절에도 여전했다. 박기웅에게 “청소년기에 인기가 많았냐”고 묻자, 눈을 크게 뜨며 “지금보다 많았다”고 답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웃음) 제가 안동 출신인데 그 곳은 소도시잖아요. 제가 유명하다기보다는 서로 다 알았죠. 돌이켜보면 그때는 인기가 진짜 많았던 것 같아요. 발렌타인데이는 주변사람들이 제가 받은 케이크를 나눠먹는 날이었죠.”
그는 사실 연기를 시작할 때 미대 진학을 준비했던 학생이었고, 예체능계에서 전교 1등을 도맡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대입에 실패했다. 자존심이 상해 있던 차 신나라 레코드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홧김에 돈 많이 버는 연예인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박기웅은 ‘팔자’나 ‘운명’을 믿는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다 어쩔 수 없는 자기의 길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연기가 직업 같아서 이쪽 일을 쭉 하고 싶고요. 많이 편해지고 좋아하고 재밌고 만족해요. 큰 선배님들처럼 오랜 시간 계속하고 싶지만 사람이 한길만 간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렇지만 가능하면 오래오래 연기 하고 싶어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박기웅은 록커 지망생으로 위장한 북한 최정예 스파이 리해랑 역을 맡았다. 김수현(원류환 역)과 이현우(리해진 역)와는 친형제처럼 많이 친해졌다.
“나이도 경력도 ‘도미솔’이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중간에 수현이가 있고 현우는 진짜 막내동생 같죠. 제 친동생이 현우보다 두 살이 많아요. 수현이도 동생 같은 데 의젓한 게 있어서 또래보다는 형 같더라고요.”
셋이 있으면 정말 재밌다면서 소리 내 웃던 박기웅. 그의 성격은 극중 캐릭터처럼 아주 쿨하고 여유로워보였다. 예민하지 않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스타일이랄까.
“실제 성격은 쿨하다기 보다는 좀 느긋한 편이에요. 모든 일이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믿죠.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등바등하지는 않는 스타일이에요. 너무 피곤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그렇게 배워왔어요.”
부모님 얘기가 나오자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던 박기웅은 “가족이 집착이 있는 편”이라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털어놨다. 혼자 산 지 만으로 11년째인데도 부모님과 매일 통화를 한다.
“부모님이 저에게 기대를 많이 하시죠. 하지만 저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 이제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해요. 옛날에는 스코어에 민감했고, 부모님 역시 기대만큼 안 되면 실망하고 그런 때가 있었죠. 지금은 ‘배우면 연기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면 된다. 작품의 흥망은 보시는 분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이 답인 것 같아요.(웃음)”
유수경 기자 uu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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