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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순대 맛, 떡볶이 맛

시계아이콘01분 03초 소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그 순대와 떡볶이 가게는 최근에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점이었다. 프랜차이즈니까 가게 문을 열 때부터 위생을 강조했고, 무슨 맛의 비법이 어떻고 마케팅의 비결이 어떻고 하면서 꽤 매스컴도 탄 프랜차이즈였다. 원래 빵집이었던 곳이 업종을 전환하더니 순대와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


애들도 집사람도 순대와 튀김류를 좋아해서(이걸 싫어하는 한국사람이 있겠냐마는) 종종 그 집에서 주전부리감을 사오곤 했다.

하지만 순대와 떡볶이의 맛에 대해선 나름대로 확고한 윈칙을 갖고 있던 나는, 자발적으로 그 집에 들른 적은 없었다. 그 원칙이 뭔고 하니 "순대와 떡볶이의 맛은 위생상태와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저분한 집일수록 맛있다"는 것인데, 그건 아마도 유년 시절의 맛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오던 길에는 여느 학교 앞 풍경과 마찬가지로 초등학생들을 유혹하는 갖가지 맛의 향연들이 펼쳐지곤 했다. 양푼에 담겨 있던 순대와 어묵 떡볶이는 기본이고, 별모양, 토끼모양의 달고나, 신문지를 원뿔형으로 말아 담아 주었던 번데기, 새빨갛고 샛노란 형형색색의 빙수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런 집들의 도마는 하나같이 누렇게 변색돼 있었고, 칼의 손잡이엔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 있었다. 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하면 그 불결함과 유혹적인 음식에 대한 기억이 혼합돼 '간식거리의 맛=불결함'으로 각인됐는지도 모르겠다. 맛이란 따지고 보면 기억에 불과하니까.


어쨌든 그날엔 집으로 오던 중에 순대와 튀김류를 사오라는 집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예의 그 집에 들러 순대를 주문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위생장갑을 떡 하니 끼고 순대를 썰고 간을 썰고 내장을 썰어 준다. "꽤나 깔끔을 떤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동포장기로 랩을 씌운 순대에 1회용 소금까지 넣어 준다.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니, 이 아주머니 위생장갑을 낀 채로 그 돈을 받더니 돈통에서 4000원을 세어서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준다. 역시 위생장갑을 낀 상태로.


"아, 이건 뭐지? 도대체 이 집은 위생상태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내 전의 손님에게도 저런 식이었을 텐데, 그러면 이 순대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끔 하는 프랜차이즈였다.


글=여하(如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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