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은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입니다. 그해 오늘 바로 6월 10일부터 본격화 해 마침내 '6.29선언'을 낳게한 이른바 '6월 항쟁'이 있었던 해니까요.
시민의 힘으로 진행된 '6월 항쟁'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화에는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외국으로부터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그해 여름 시청일대에는 수많은 대학생과 직장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모여들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습니다. 시위대는 날로 불어났고 6월 29일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표는 결국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는 특별선언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희생과 눈물이 그 뒤에 있었습니다. 잠시 1987년으로 돌아가 그 해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볼까요.
1987년은 7년 단임으로 물러나게 된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새롭게 권력을 쥐어야 하는 중요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좋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그해 1월 14일 서울대 박종철 군이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이를 조직적으로 숨기려 했다가 발각되자 여론은 극도로 악화됩니다.
이에 직접 투표를 해서는 권력이양에 승산이 없다고 보고 전두환 대통령은 4월 13일, 호헌조치를 발표합니다. 다수의 국민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계속해서 간접선거로 뽑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야당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를 결성해 전국적인 집회를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6월 9일 연세대 이한열군이 시위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해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열군은 그해 7월 5일 끝내 숨지고 맙니다. 시민들은 흥분했고 6월 10일 전국 각지에서 '박종철 군 고문 살인 은폐 조직 규탄 및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 대회'가 열린 것을 계기로 '6월 항쟁'이 본격 시작된 것이죠.
우리에게 6월은 정치적으로 참 많은 일이 일어난 달입니다. 멀리는 1926년 순종 장례일에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는 '6.10 만세 운동'이 있었지요. 또 지난 2008년에는 촛불시위가 절정에 달해 그해 6월 10일에는 광화문 일대에 수십만명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2013년 6월 오늘.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고, 남북간의 갈등도 여전합니다. 앞으로 10년 후인 2023년 6월에는 경제선진국을 바탕으로 한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를 무대로 우뚝 서 있기를 바랍니다.
백재현 온라인뉴스본부장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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