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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빈섬의 '담배 있나' 중에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5초

담배 있나 물었다/없습니다 가져올까요 대답하자/아니 가져올 필욘 없어/중얼거렸다/바위 침묵이 흐른 뒤/다시 말했다/저기 사람들이 지나가네/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이다/오는 길은 깔딱고개/가는 길은 벼랑/잠 못 든 부엉이 운다/돌아보면 추격하는 이승/내딛으면 추락하는 저승/고치고 고친 문장들이
목 뒤의 옷깃처럼 자꾸 스쳤다/스스로를 선고한 운명에 서서/억울한 낱말 몇 개 다시 고치고 싶었다/담배 있나/고향에 마악 내려갔던 그가/찍어보낸 근황은/슈퍼 시골아저씨 담배피는 모습이었다/삐딱하게 한 개피 꼬나문 얼굴엔/숨 돌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야심만만한 의원 시절/투쟁노동자와 나눠 피던/그 맛과는 다른 무용담 한 모금/이건 참 맛있는 삶이었다/귀향의 자리에서 다시/조금 더 먼 곳으로/귀향을 하는 그 시간/담배가 땡겼다/굳이 가져오라 하지는 않았다/인생이 꼭 맛있을 필요 있는가/삼켰다 뱉으면 연기 한 올/무너지는 육신에 미안해하며/영혼을 구름에 망명시키고 싶었다/저기 사람들이 지나가네,/저기가 여기였고 여기가 저기였다/원래 바람이었는데/바람 타고 다닌 풍문이었는데/바위 아래로 날아가는 동안/아주 느린 속도로 착지하는 동안/돌을 쪼아 새긴 신탁같이/굳은 예언이 되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정치인은 대체로 한 방향의 관점으로 읽을 수 없는, 다면체이기에 섣부른 찬사나 성급한 비판은 늘 그 사람을 말하지 못한다. 우리 역사에 있었던 참 희귀한 대통령이 남긴 좋은 쪽의 충격파를, 겨레가 성숙하는 자양분으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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