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안 받아들이든지 소비자들이 전자책 불법 콘텐츠 찾게 하든지 선택하라"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미국 법무부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전자책 가격 담합 소송의 증거로 공개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이메일에서 잡스가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한 점이 드러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24일 매셔블 등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등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출시 전인 지난 2010년 1월 제임스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부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공개됐다. 제임스 머독은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들이다.
잡스가 머독에게 보낸 이메일은 뉴스코퍼레이션의 자회사인 출판사 하퍼콜린스가 애플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게 될 전자책 가격을 12.99달러 또는 14.99달러로 책정하도록 설득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하퍼콜린스측은 전자책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14.99달러 이하로 고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잡스는 "아마존은 전자책 가격을 9.99달러로 책정하는데 이는 (가격이 너무 낮아) 소비자에게 제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이 같은 부작용을 피하면서도) 실제 책이 아니고 유통 비용도 없는 전자책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가격적으로 이익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책 가격을 16.99달러 이상이 아니라 12.99달러에 책정하기를 원한다"며 "애플은 음악, 영화 콘텐츠를 유통할 때보다 많은 이익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설득했다.
머독은 답신을 통해 "애플의 제안은 우리가 다른 지역에서 더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유연성 측면에서 전자책 가격을 고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잡스는 완강했다. 그는 "3가지 대안이 있다"며 "애플과 함께 12.99~14.99달러의 가격으로 주류 전자책 시장을 만들어 가든지, 아마존과 함께 전자책 가격을 9.99달러에 책정하든지,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빼서 소비자들이 불법 콘텐츠를 찾게 하든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격이 높아지면 모두 다 실패할 것"이라며 "아마존이 전자책을 9.99달러에 판매하는 상황에서 12.99달러나 14.99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프라인에서 판매되는 책에 맞춰 전자책 가격의 상한선을 정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머독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하퍼콜린스는 애플이 원하는 가격에 전자책을 공급하게 됐다. 매셔블은 "잡스는 항상 이런 종류의 협상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수완가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 법무부는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 애플과 사이먼앤슈스터, 해치트북그룹, 하퍼콜린스, 맥밀란, 펭귄그룹 등 대형 출판사 5곳을 상대로 전자책 가격 담합을 벌인 혐의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출판사와 애플이 담합해 전자책 가격을 14.99달러로 책정하면서 가격이 더 낮게 정해질 가능성을 없애고 소비자들의 추가 비용을 크게 늘어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애플은 이와 관련해 다음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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