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윤창중 전 대변인의 귀국을 누가 지시했는지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린다. 윤 전 대변인은 "상사인 이남기 홍보수석의 귀국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입장이고 이 수석은 "본인이 결정한 것"이란 상반된 주장이다. 둘 중 한 명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윤 전 대변인의 행동이 성추행인지 아닌지 본질적인 논란과 별개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성추행 혐의자를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도주시킨 것 아니냐는 민감한 사안이라서다. 또 이 수석의 개인적 판단에 따른 것인지 혹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보고된 사안인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11일 오전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또 이 수석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후 자신에게 귀국을 종용했다고 했다. 이 수석은 "재수가 없게 됐다. 성희롱에 대해서는 변명을 해봐야 납득이 되지 않으니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 비행기를 예약했으니 한국으로 가라"라고 했다는 게 윤 전 대변인의 전언이다.
"해명을 해도 여기서 하겠다"는 윤 전 대변인의 주장이 묵살되고 청와대가 귀국을 결정해 비행기편까지 예약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석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이 끝난 이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황상 100% 기억나진 않지만 제가 귀국하는 게 좋겠다거나 얘기한 건 없다. 귀국 항공권을 예약한 적도 없다"며 윤 전 대변인과 180도 다르게 이야기했다. 또 이번 사안과 관련 "책임질 상황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 수석이 언론 등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관련 내용을 처음 보고 받은 것은 윤 전 대변인이 여성 수행직원과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 9시경이다. 이 때 이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은 10시30분 미 의회 연설 일정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이 수석은 전화로 상황을 듣고 윤 전 대변인에게 "의회로 오지 말고 일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이 행정관들과 상의한 후 한국행을 결심했으며 이 수석은 이를 두고 "가든지 말든지 본인이 결정하도록 한 것"이란 취지로 언론에 설명했다.
윤창중-이남기 중 1명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민감한 일이란 걸 방증하고 있다. '기억이 정확치 않았다'고 말하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시간도 별로 흐르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 입장에선 "현장에서 해명하려고 했을 정도로 떳떳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대변인 직함은 잃었지만 '도망치듯 귀국했다'는 기존 보도를 놔두는 것은 수사 결과과 상관 없이 명예까지 잃는 일이다.
반면 이 수석은 대통령이 미국에서 연설하고 있는데 그 대변인이 경찰에서 수사를 받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만은 일단 피하려 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게다가 성폭력을 4대악 중 첫 번째로 꼽는 박근혜정부의 홍보수석이 성 사건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를 도주시켰다는 건 정부 차원의 치명타다. 본인에 대한 책임 추궁은 물론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될 수 있다.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이 수석과 청와대 측은 공식 입장을 정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주말 내 공식 발표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 상태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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