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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태준의 '논산 백반집'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4초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문태준의 '논산 백반집'



■ 시가 어디에 있는가. 언어에 있는가. 기교에 있는가. 아름다움에 있는가. 하늘의 비의(秘意)를 잠깐 들여다본 자의 중얼거림인가. 문태준은 그런 질문에 피씩 웃는듯 하다. 시는 HD동영상보다 더 리얼한 저 짧은 영화 한 편에 꽉 차 있지 않은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밥손님을 치르느라 고단해진 육신이, 늦게 찾아온 우중충한 손님 하나가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리다 끝내 졸음의 삼매에 들었다. 불룩한 배는 불규칙한 삶의 곡절과, 제몸을 돌볼 틈도 없었던 고생의 이력을 한눈에 증언해준다. 졸면서도, 문득 긴장감이 돋아나 깜짝 놀라며, 살아있는 느낌을 확인하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제 팔을 긁는다. 이 장면, 무척이나 낯익은, 어디선가 봤던 어머니 혹은 아주머니의 동작이 아닌가. 끝내 잠을 못 이기고 아예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여인. 그는 음식값을 가만히 놓고는 식당 밖으로 나온다. 여전히, 손님이 가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여인의 숨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주인은 잠을 먹고 손님은 밥을 먹는, 그 허기진 생의 주름이 겹치는 시 한 편, 우린 이 때묻은 풍경을 쉬 떠나지 못한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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