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솔직히 원정에서 경기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성남일화의 '캡틴' 박진포에게 지난 10개월은 악몽과 같았다. 거듭된 부진에 홈 무승이란 오명까지 더해져 극심한 마음고생을 겪었다. 제집처럼 친숙해야할 무대는 늘 불안하고 불편했다. 빗발치는 팬들의 원성. 주눅 들고 작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홈구장은 피하고 싶은 장소가 돼버렸다.
그토록 버거웠던 징크스는 무려 310일 만에 깨졌다. 성남은 14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3 6라운드 전북과 홈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지난해 6월 9일 경남전(2-0 승) 이후 10개월 만이자 15경기 연속 홈 무승(4무11패·10월3일 상주전 제외)의 악몽을 털어냈다. 개막 이후 여섯 경기 만에 시즌 첫 승을 따내며 1승2무3패(승점 5)로 단숨에 리그 10위로 올라섰다.
숱한 위기를 이겨낸 감격의 순간이었다. 선수단은 환호하는 홈팬들 앞에서 모처럼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관중석을 따라 일일이 인사를 건넨 뒤 환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연속골을 합작한 김동섭과 김인성은 밀려드는 사인공세와 스포트라이트 속에 승리의 여운을 즐겼다.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훈훈한 광경이었다.
반면 숙소를 향하는 박진포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다. 부상으로 왼 발목에 얼음을 덧댄 걸음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그는 "경기가 끝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홈에서 오랫동안 이기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야 부담을 털어낸 것 같다"며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남다른 침착함에는 사연이 있었다. 박진포는 지난해 부 주장으로 40경기를 소화하며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다. 내리막을 걷던 성남의 위기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과 함께 손발을 맞추던 동료들이 하나 둘 팀을 떠나고 밀려드는 자책감과 맞서야했다. 주장 완장을 물려받은 올 시즌은 책임감이 한층 무거워졌다. 새로 가세한 선수들을 이끌며 부진했던 성적을 만회해야 하는 중책까지 맡았다. 결국 2년 연속 호흡을 맞춘 김성준과 함께 유이하게 선발로 나와 해묵은 징크스를 털어내는데 성공했다.
박진포는 "오랜만에 이겨서 기분은 좋지만 힘들었던 순간을 생각하니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며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의미가 남다른 승리"라고 회상했다. 이어 첫 승의 만족감을 전하는 김태환을 향해 "네가 뭘 알겠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짓누르던 부담을 털어낸 그는 "이제 한 경기를 이겼을 뿐이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만큼 매 경기 달라진 모습으로 잃어버린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흥순 기자 s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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