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국회 다수를 차지한 여당이 기습적으로 본회의를 열고 법안을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대리투표 문제가 불거지자 한 의원은 연예인 스캔들을 터뜨려 수습하고자 한다. 장외투쟁을 벌이던 여야 지도부는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이며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다. 한 의원은 정치권을 향해 '박테리아 수준의 쓰레기'라고 맹비난하며 의원직을 던지려 한다"
최근 국회를 배경으로 한 SBS 수목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에서 나타난 국회의 모습이다. 드라마는 정치 풍자를 담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이 보여준 '과거의 모습'이 상당수 가미됐다. 그러나 19대 국회가 드라마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수록 정치 참여가 떨어지고 정치 혁신이 늦어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비춰진 모습과 현실의 국회 모습을 비교해봤다.
우선 드라마의 모습은 지난해 국회에서 개정된 국회법(국회선진화법)의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는 더 이상 망치와 방망이, 전기톱을 동원한 몸싸움은 찾아볼 수 없다. 거대여당의 기습적인 날치기 처리도 사라졌다. 아직 19대 국회가 적응 수준이어서 정부조직법 처리 과정에서 상당한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날치기와 몸싸움은 없었다.
지난해 5월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은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등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여당의 단독 처리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지면서, 물리력을 동원한 야당의 실력저지도 일어나지 않는다.
룸살롱 정치는 여의도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과거에는 산하기관이나 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의원이나 보좌관을 대상으로 접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선후보가 룸살롱에 갔다는 의혹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일 정도로 정치문화는 성숙했다. 법적으로 성인 남성이 유흥주점에 가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위법한 행위는 아니지만, 이미 정치인으로서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물론 '밀실 정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 현안에 대해서 비공식 회동을 할 때면 국회의사당 인근의 호텔 커피숍이나 고급 음식점을 애용한다. 언론이나 상대 정당의 감시에서 피하기 위해 독립된 공간을 찾으려는 목적이 크다.
소수정당의 나약한 모습도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드라마에서 노민영(이민정 분)은 여야 지도부를 향해 술잔을 던진 후 의정활동의 후폭풍을 걱정하며 사과문을 발표한다. 그의 발목을 잡는 야권연대는 현실에서 선거에서 주로 작용한다. 입법 활동에는 크게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19대 국회의 소수정당인 진보정의당이나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도 상당수다. 의원들 개개인이 법안 내용을 검토하고 공동발의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배타적으로 대하진 않는다.
아쉽게도 당 지도부와 정치권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김수영(신하균 분)과 같은 인물도 없다. 그러려면 차기 선거에서 공천장을 받는 것을 포기해야만 해서다. 전문성을 지닌 중년의 보좌관이 의원에게 조언을 하는 경우도 찾기 어렵다. 대부분 의원들은 업무 편의를 위해 자신보다 어린 보좌관을 찾는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가 국민들을 실망시킨 내용을 극대화했다. 과거의 국회가 보여준 모습,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모두 비현실적이진 않다. 국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상상력을 적절히 가미했다. 당론이 아닌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법안을 표결하고, 당 지도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며 토론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이민우 기자 m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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