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세종청사 옥상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3.5km의 산책로를 따라 나무와 꽃으로 조성된 정원 길이다. 점심 식사 뒤 종종 걷는다.
청사는 용의 모습으로 설계됐다. 국무총리실이 있는 1동이 용의 머리고 공정위 기재부 해수부 농식품부 국토부 환경부가 6동까지 몸을 이루고 있다. 총리실 옥상정원에 서면 국내최대 인공호수인 세종호수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을 휘감아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본의 아니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뒤 옥상에 가는 일이 종종 있다. "미안합니다. 서울에 급한 보고가 생겨서 점심약속은 다음에…" 이런 전화를 받는 날이다. 당연하게 생각한다. "일단 잡아놓고 어려우면 다시 합시다"라고 사전에 양해했기 때문이다. 총리 부총리 장차관이 다 서울에 있어서 다른 간부들과의 약속은 파리목숨이다. 어쨌든 이런 날은 공치는 날이다. 주요 취재원이 서울에 몰려가 있는 날이 더 많다. '객지에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이번주도 공쳤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겸 기재부장관의 금주일정을 받아보며 든 생각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모든 주요 일정이 서울에 있고 금요일로 예정된 총리주재 국가정책조정회의 일정도 장소가 미정으로 적혀있었다. 책임총리와 책임부총리가 집과 사무실이 있는 세종시를 놔두고 서울에만 가 있다. 왜 일까? 혹시 면목동 구렁이인가?
면목동의 중랑초등학교위쪽에 여기연이란 큰 연못에 용이 되려는 구렁이가 살고 있었다. 이 숫구렁이는 구리 장자연에 있는 암구렁이를 좋아했다. 틈만 나면 아차산을 타고 구리에 놀러 다녔다. 암구렁이는 용이 돼 승천했는데 숫구렁이는 공력을 낭비해 용이 아닌 이무기가 됐다. 면목동 민간설화다.
책임총리 책임부총리 책임장관이 세종시에서 해야 할 일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본연의 업무를 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종시에 자리를 잡아 국토균형발전을 이루라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만 머물고 있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공력을 쌓아야 하는데 청와대만 바라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지방방문지로 세종시를 택했다. 박대통령은 "지역균형 발전의 상징인 세종시에서 국토부와 환경부의 첫 업무보고를 받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이다. 박대통령은 세종시를 축소수정하려는 이명박전대통령에 야당과 함께 맞서 세종시원안을 관철시켰다. 세종시는 노무현전대통령이 시작했지만 박대통령의 지분도 많다.
그런데 각료들은 다르다. 세종시를 벗어나 서울에 아예 살림을 차리고 있다. 세종시의 모든 부처가 정부중앙청사 10층에 업무공간을 확보했다. 기재부는 영상보고시스템을 만들었다. 서울에 있는 부총리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세종청사에 있는 국무회의실에는 먼지만 쌓여있다. 모든 것은 서울에서 이뤄지고 세종시는 방만있다. 출입기자 200여명이 세종시에 있는데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중 가장 중요한 두가지 정책인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방향'과 '부동산대책'이 서울에서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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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각료들의 청와대 사랑이 면목동 구렁이의 구리 구렁이 사랑보다 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바라기로는 책임총리도 책임장관도 있을 수 없다. 사라져가는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이 각료들의 책임인지 박대통령의 책임인지는 아직 했갈린다. 그러나 용의모습으로 설계된 세종시가 가면 갈수록 이무기로 변질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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