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분위기 탄 ‘협동조합’…하지만 싹 틔울 ‘이것’이 없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58초

설립 앞두고 가장 큰 걸림돌 역시 ‘자금’
현재로선 지자체나 금융기관 도움 못 구해 ‘쩔쩔’
전문가들, “아이디어·열정에 투자하는 문화 필요해”


[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시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은 ‘한국제봉기기소상공인협동조합’ 정대근 대표는 설립 준비에만 꼬박 3년을 투자했다. 종잣돈을 마련하고 정보를 모으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했다. 다른 무엇보다 금융권이 운영하는 자금지원안이 전무하다시피해 고충이 컸다. 정 대표는 "운영은 둘째치고 설립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조달할 수단이 없어 답답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협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미진한 협동조합 금융지원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경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금융지원책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각 지자체는 물론 금융기관에서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에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2월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 상에도 '각 지자체는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만 명시돼 있다. 기본법이 협동조합 선진국인 유럽의 법안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맹점도 지녔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유럽은 협동조합 설립자들이 신용금고나 시중은행을 통해 담보 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을 시행 중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같은 지원안은 부재한 실정이다.


서울시에서 기본법 시행 이후 신고·수리와 법원등기, 사업자등록을 거쳐 운영 중인 협동조합은 3월 말 기준 185개다. 서울시 심사를 통과해 설립신고증을 받은 조합만 올 1월 25개에서 2월 44개, 3월에는 82개로 급증하는 추세다. 전체 신청도 250여건을 넘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강조해 온 '협동조합도시 서울' 비전과 2월 발표된 '협동조합 활성화 기본계획' 등이 확산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협동조합 붐 속에서 설립 당사자들이 ‘초기자본금’ 마련이라는 버거운 현실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각 지자체의 정책은 기반 조성을 위한 설명회나 세미나, 행사 등에 집중돼 있을 뿐 무엇보다 절실한 초기자금의 지원은 미미하다.


정착과 성장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자금을 대겠다고 나서는 금융기관이 적은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런 형편에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은 지자체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정도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다. 신규출점한 영세 규모의 협동조합이 대상자로 선정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도 올해 협동조합분야에 편성된 21억원의 예산을 교육과 홍보, 공모사업 대상자 운영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 부족을 개선하는 데에 예산이 주로 편성되다 보니 설립과 운영에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이 걸음마 수준에 있어 이를 제고하기 위한 분야에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며 "현재로선 단순한 수적팽창보다는 자립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에 역량을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자금지원을 위한 제도개선 및 활로개척을 대안으로 꼽는다. 협동조합이 갖는 가치의 공유를 통해 초기 수준에 있는 인식을 끌어올리고, 그 가운데 정부와 금융권이 주도하는 투자활성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금 관련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국회 차원의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헌조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는 “협동조합 법령 자체가 없는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우리의 기본법은 매우 선진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유럽 선진국들처럼 설립자의 아이디어와 열정만 보고도 투자가 이뤄지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사장 역시 “금융기관과의 연계를 위해선 우선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같은 보편적 기업형태라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초기단계 활성화를 위해 협동조합에 특화된 금융지원안이 마련돼야 하고 이에 국가나 지자체가 전향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와 신용협동조합(신협)은 지난 1일 설립 및 운영자금 부족으로 창업과 대출에 고충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향후 두 기관은 사회투자기금 상시화와 사회적경제 조직 융자제도 등을 두고 협의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