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김민희, 이민기가 보여주는 '현실연애의 모든 것'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한 연인이 있다. 3년을 만난 이들은 이제 막 헤어졌으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더 이상 '연인'이 아니다. 다른 영화들처럼 이별의 상처에 아파하면서도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가슴 저릿한 '옛 연인'의 모습은 이들에겐 없다. 서로를 향한 악다구니를 퍼붓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증'이란 것은 한 끗 차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로 영화 '연애의 온도'의 동희(이민기)와 영(김민희)의 이야기다. 은행 동료인 이들은 비밀 사내연애를 해오다 이제 막 헤어졌다. 허구헌날 싸우다 보니 헤어진 이유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이별 그 후 '사랑과 전쟁, 제2탄'의 서막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헤어지고 나서 이들이 하는 행동은 쪼잔하고, 찌질하다 못해 유치하다. 상대방의 물건을 보란 듯이 망가뜨려놓은 채 착불로 배송시키거나, 커플요금제를 해지하기 전 상대방이 요금폭탄을 맞도록 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귀여운 축에 속한다.
그, 혹은 그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을까 촉을 세우고, 질투하고,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고생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관계가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헤어졌지만 아직 헤어질 준비가 안 된 이들은 결국 오래된 커플이 그렇듯 용기를 내 다시 만난다.
영화의 대부분은 이들이 싸우고, 욕하고, 치고박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데 할애한다. '리얼리티 쇼'에서나 볼 수 있던 인터뷰 영상은 이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장치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적인 연기도 연애 영화의 판타지를 걷어내는 데 한 몫 한다. 여기다 은행 동료들의 추임새는 잔재미를 더한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던 이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모습이 뭉클하게, 혹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순간도 종종 있다. 끝난 사랑을 노력으로 붙들려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 헤어진 연인은 똑같은 실수로 다시 헤어진다'는 '영'의 말을 찬찬히 되짚게 된다.
뜨거웠던 연애의 온도가 식어버렸을 때, 이 둘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정적이야 말로 노덕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그 '온도'가 아니었나 싶다.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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