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결국 우려하던 일이 불거졌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의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즉 시퀘스터가 발동된 것이다.
850억달러나 되는 예산 지출 삭감을 눈앞에 두고도 전세계가 미국의 정치권을 주목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협상테이블에 앉았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양측이 대화에 나선 것은 이미 '디데이'를 지난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협의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단 몇시간 동안 진행된 백악관과 공화당간의 회담은 협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모습만 보인채 의미없이 마무리됐다.
이번 시퀘스터 사례는 정치가 모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의 대표적인 예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는 과정에서 미국 정가는 조용할 날이 드물었을 정도다. 백악관의 벼랑끝 전술과 공화당의 버티기속에 좀처럼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시퀘스터 협상도 서로 제목소리 내기에만 바빴다. 증세를 추진하는 오마바 대통령은 여론몰이에만 집중했고 공화당과의 협상은 뒷전이었다. 공화당도 뚜렷한 대안 없이 접점을 찾기 보다는 자신들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외신들은 이같은 소극적인 대응의 이면에는 시퀘스터의 영향이 심각하지 않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미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그리스도 두차례나 총선을 거쳤다. 국론분열의 시간이 길어지고 위기 탈출을 위한 조치가 지연된 결과는 그리스는 물론 유럽을 넘어 전세계 경제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유럽에서도 위기탈출의 모범생으로 여겨지던 이탈리아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개혁과 긴축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총선에서 그대로 나타나며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개혁이 뒷걸음질 칠 상황이다.
경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국민들의 노력외에 정치권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그럼 우리는 어떤가.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탄탄한 국력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왔지만 새정부는 출범하자자자 정부조직법이 국회에 발목잡혀 제할일을 못하고 있다.
처리할 일은 쌓여있는데 대통령과 총리만 있는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도 우리에게 유리한 듯 했던 경제상황이 최근 악화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지만 시간만 흐르고 있다.
우리와 반대로 일본과 중국은 정권 교체와 함께 빠른 속도로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어 대조된다.
세계 환율 전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는 일본은 엔화 약세를 앞세워 경제 부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선거 전 부터 양적완화를 공공연히 약속하며 정책의 방향을 확실히 제시했고 시장은 엔화 약세에 베팅하기 시작했다. 정책의도가 명확하다보니 시장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신임 일본 은행 총재가 무제한 채권매입 정책을 곧 실시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은 또 어떠한가. 3일부터 열리는 양회를 통해 공식적인 시진핑 시대가 열리면 지난해 부진했던 경제 활력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미국과 우리의 정치권이 제역할을 못하는데도 증권시장이 냉담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미국의 다우지수나 우리의 코스피 지수는 시퀘스터와 원화가치 급등이라는 악재를 안고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권의 반복되는 잡음에 내성이 생겼다는 뜻이 아닐까.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아예 포기하는 정치 불신의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새로운 희망을 줘야 하는 정치가 갈등만 부추기는 모습이다.
시장의 신뢰를 받는 정치가 아쉽다. 불확실성을 부추기기 보다 희망을 예고하는 정치가 경제를 주도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새정부 출범과정의 잡음에 대해 보이는 유권자들의 무관심의 의미를 되돌아 봐야할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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