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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탈세'의 숙주, 차명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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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탈세'의 숙주, 차명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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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 탈세사건을 보면 대부분 차명(借名)계좌와 연관돼 있다. 삼성가 형제간 재산 다툼의 쟁점은 문제의 삼성 차명주식이 그들의 부친 이병철 창업주의 재산인가 아닌가이다. 그런가하면 롯데그룹의 어느 회장 손자는 할아버지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주식을 사고팔아 100억원의 매매차익을 냈다고 한다. 도대체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어떻게 주식을 알아서 사고팔았을까.


차명계좌란 통장 명의자와 입금된 돈의 주인이 다른 계좌를 일컫는다. 만일 내 통장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0억원이 입금됐다면 이 돈은 내 돈인가 아닌가? 내가 꺼내 쓰면 처벌을 받을까? 세금은?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겠지만, 전부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민법상 동산(動産)은 점유하는 자가 소유권을 갖는다(부동산은 등기를 해야만 권리 주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입금한 사람이 착오로 입금했다고 입증하면 부당이득금 반환청구가 가능하다.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착오가 아니라 서로 짜고 하면 어떨까? 재미가 제법 쏠쏠해진다. 쉽게 말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수 있다. 특히 세금이 그러하다. 재벌 회장이 자녀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고 자식들로 하여금 사용하게 함으로써 증여세를 포탈하는 행위는 너무 흔한 일이다. 변호사나 성형외과 의사가 대가를 현금으로 받아 차명계좌로 예금하는 경우 과세관청이 세금을 매기기 어렵다. 왜냐하면 돈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이 과세관청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과세할 경우 소송으로 가면 법원에서 100% 패소한다. 차명계좌가 탈세라는 기생충의 숙주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장 명의인이 변심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에 대해 몇 차례 서로 엇갈린 판결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최근 일단 예금 명의자의 권리라고 재정리했다. 그러면서 명확한 예금반환 청구권 약정이 있는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입금인의 돈이라고 했다.(2009년 3월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민사 관계야 그렇다 치고 세금은 어떻게 될까. 현행 세법 규정을 보면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 자체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차명계좌에서 인출돼 등기나 등록이 필요한 재산을 사지 않는 이상 증여세도 부과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내 통장에 100억원이 입금됐어도 내가 이를 꺼내서 쓰지 않는 이상 과세관청이 어찌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어떻게든 세법의 구멍을 찾으려 드는 '탈세 두더지들'에게는 차명계좌가 위대하게 보이리라.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증여추정' 규정이 신설됐다(상속세법 제45조 제4항). 차명계좌의 돈은 착오입금이든 서로 짠 경우이든 일단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명의인이 자금 출처를 입증해야만 한다. 들리는 말로는 과세관청이 이미 수조원대의 차명계좌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기생충을 없애는 방법 중의 하나가 숙주를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증여추정 규정대신 아예 통장 명의인의 돈으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하는 '증여의제(擬制)'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명의를 빌려준 사람을 형사처벌해야 한다. 이는 헌법의 조세공평 구현과도 맥이 닿고 금융실명법의 보완책도 된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확실한 세수 확보 방안이기도 하다. 이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대신 '바르게 살아보세'로 바꿀 때다. 그래야 박근혜 정부가 '비욘드(beyond) 박정희' 시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차명계좌라는 탈세 두더지를 두들겨 잡자. 그래야 국민행복과 희망의 시대도 열린다. 박근혜 정부의 결단을 기대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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