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 4명이 뭉쳤지만 톱스타급은 아니다. 여기에 중량감이 돋보이는 여배우도 가세했지만 그녀의 분량은 많지 않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은 초짜다. 게다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많은 예산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 수많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뻔하지 않은, 독특한, 문제적인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제목은 '분노의 윤리학'. 군대 간 이제훈에 충무로의 '섭외 1순위' 조진웅, 곽도원, 김태훈이 뭉쳤다. 여기에 문소리가 나와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고 퇴장한다. 신인 박명랑 감독이 각본, 연출까지 맡았다. 영화를 본 이들은 '쿠엔틴 타라티노'를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한다. 보고 나면 논쟁할 게 많은 영화기도 하다.
주연배우 김태훈이 직접 전하는 영화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 "여성분들이 영화를 안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본 분들이 '통쾌하다'고 반응한다. 남성분들은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난 저러지 않아'라고 부정한다. 약하고, 찌질하고, 비열한 그런 모습이 가감없이 나온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한 미모의 여대생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당한다. 그녀의 죽음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네 남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헤어진 그녀를 못잊어 스토킹하는 전 애인, 아파트 옆집에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한 경찰, 그녀를 호스티스의 세계로 몰고 간 잔인한 사채업자, 그녀와의 불륜을 저지른 대학교수. 이 네 명은 모두 그녀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나쁜 놈, 잔인한 놈, 찌질한 놈, 비겁한 놈 이 네 명 중 누가 제일 '악인'인가? 여기서 김태훈이 맡은 역은 스토킹하는 전 애인 '현수'다. 특이하게 이 작품은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직접 자신이 맡을 역을 '셀프 캐스팅'해 화제가 됐다. 신기하게도 다들 맡고 싶어한 배역이 현재의 캐스팅과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한다. 김태훈은 "처음부터 '현수' 역이 마음에 들었고, 가장 공감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에서 네 남자 모두 서로 상대방이 더 죄가 많다고 생각한다. 남탓 하고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들이 관객들은 어이없으면서도 웃길 것이다"고 설명했다. 다른 동료 '악인'들에 대한 칭찬도 이어진다. "조진웅은 유머가 있으면서 관객의 눈이 계속 가게 하는 힘이 있다. 곽도원 형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있으며, 이제훈은 그만의 독특한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리고 문소리 선배는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정확하게 표현해 놀랐다."
촬영 현장은 조용한 가운데서도 에너지가 넘쳤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배우들은 "누구 하나 도드라지지도 쳐지지도 않고,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때 스토리나 캐릭터를 보지는 않는다. 다만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서 '와, 이건 진짜같다'라는 느낌이 오는 작품을 선호한다. 장르는 코미디, 액션 가리지 않는다. '분노의 윤리학'은 독특하고 신선한 느낌도 있었지만, 내용이 탄탄하고, 상황들이 잘 납득이 돼 좋았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김태훈은 연극 무대로 데뷔해 독립영화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꾸준히 상업영화에도 얼굴을 내밀면서 차곡차곡 이력을 쌓아갔다.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에는 시트콤까지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배우 김태우의 동생이란 꼬리표도 자연스레 떨어져나갔다. "첫 스크린 데뷔작 '달려라, 장미'는 연극에서 영화로 노선을 바꾸게 해준 작품이고, '약탈자들'은 독립영화계에서 인지도를 쌓게 해줬다. 영화 '아저씨'의 성공은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번에는 '분노의 윤리학'이 또 한 차례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배우로서 목표도 다진다.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하고 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역에 꾸준히 캐스팅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결핍에 대한 고민은 늘 하고 있는데, 사실 맡은 역할 잘 소화해내기도 바쁘다(웃음). 깨지고 다치더라도 다양한 역에 도전해보고 싶다. 오래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조민서 기자 summer@
사진=윤동주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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