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물 분쟁 연간 2000건…절반은 제조판매·세탁업체 책임
분쟁 최소화하려면 옷상태 점검하는 인수증 꼭 작성해야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1.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사는 김모(32·여)씨는 최근 무릎 길이의 니트 원피스를 인근 세탁소에 맡겼다가 큰 낭패를 봤다. 원피스 밑자락에 지름 5㎜의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 세탁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김씨는 그 즉시 세탁소로 달려가 항의했다. 하지만 세탁소 주인은 오히려 "이미 낡은 옷을 가지고 웬 행패냐"며 "증거를 가져오면 배상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김씨는 "구입한 지 오래돼 영수증도 없고 이래저래 억울한 마음 뿐"이라며 "미리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2. 마포구 서교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최모(51)씨는 지난 1월 고객이 맡긴 2만8000원짜리 블라우스 하나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기계 세탁을 한 후 블라우스의 표면이 군데군데 울퉁불퉁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원단이 원체 약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해명한 최씨에게 손님은 "딱 한번 입은 옷이 망가졌으니 옷값을 전부 배상해달라"고 생떼를 썼다. 최씨는 "제조사 책임도 있는데 무조건 세탁소 탓으로 돌리는 태도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환절기가 다가오면서 세탁소를 맡겨지는 겨울옷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또 세탁소에 맡긴 옷이 손상돼 시비가 붙었다는 사연 역시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세탁물 분쟁이 급증하는 이유는 제품에 하자발생 시 쌍방간에 원인 규명을 명확히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의류의 가격이 고가일수록 높은 배상액을 두고 의견 대립은 더 치열해진다.
성북구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인 박모(58)씨는 "기계를 돌리는 우리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라며 "세탁 전 옷 상태를 확인하긴 해도 그 많은 옷을 꼼꼼하게 점검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봐도 확연히 하자가 생긴 경우에는 심의까지 안가도 우리도 배상을 한다. 하지만 명품옷이라며 대뜸 몇십만원씩 물어내라고 우기는 손님들도 있어 무턱대고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세탁 관련 분쟁은 총 1853건이었다. 이는 2008년 785건, 2010년 1184건, 2011년 1591건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난 수치로, 최근 5년 사이 배 이상 급증했다. 분쟁 항목으로는 세탁물의 이염·수축·탈색 등 '세탁물 하자'가 가장 많았고, 분실이나 기타 보상절차에 대한 갈등도 포함됐다.
세탁소와 소비자간에 해결되지 못한 분쟁은 소비자원에서 운영하는 세탁물분쟁심의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 판매업자, 세탁업자 중 누구나 의류심의를 의뢰할 수 있으며 심의를 통해 제조사나 세탁소의 부주의가 판명됐을 경우 배상비율표에 따라 제품 사용기간이 30일 이내면 원가의 약 95%를, 100일 이내면 원가의 약 80% 정도를 배상받을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약 150건의 세탁심의가 매주 실시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50~60%가량이 제조판매 및 세탁업체 책임으로 판명되고 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의류라는 소재의 특성상 훼손 원인을 100% 규명하기는 어려운 만큼 소비자는 세탁물을 맡길 때 옷 상태를 점검하는 인수증을 꼭 받아둬야 한다. 또 세탁된 옷을 인수받을 때 그 즉시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세탁업 규정에 따르면, 세탁업자는 세탁물 인수 시 세탁물의 하자여부를 확인할 책임이 있다. 또 세탁업자와 소비자의 정보, 접수일, 완성예정일, 구입가격 및 구입일, 품명, 수량, 세탁요금 등이 기재된 인수증을 발급하게 돼 있다.
한국세탁업중앙회 이성범 사무총장은 "배달·수거 서비스 이용이 많아지면서 제품의 상태를 즉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쟁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세탁업주 입장에서는 의류 접수시 꼼꼼히 확인해 하자여부 등을 미리 소비자에게 고지해야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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