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반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29일 설 특별사면을 단행키로 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격화할 조짐이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윤창중 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번 특별사면 조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부정 부패와 비리 관련자들에 대해 사면을 강행한 것은 국민적 지탄을 받을 것이며 이 모든 책임은 이 대통령이 져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윤 대변인은 "인수위 대변인은 대통령 당선인을 대변하는 자리"라며 이 같은 입장 발표가 박 당선인의 의지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 당선인 측은 지난 28일, 26일에도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전까지 박 당선인은 정국 현안에 대해 침묵해왔다. 그는 '당선인은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기조 속에 공개일정을 최소화하고 기자회견장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이에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됐던 신(新)ㆍ구(舊) 권력 간 신경전이 이번에는 재연되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특별사면을 둘러싼 갈등으로 유례없는 신ㆍ구 권력 사이의 평화무드가 물 건너가게 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허니문 기간(정치적 밀월기간)이 끝났다고 본다"며 "이제 4대강 사업,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택시법 등 다른 사안을 놓고도 현 정부와 박 당선인이 힘겨루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4대강 사업이 부실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해 현 정부와 박 당선인 측은 다소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는 "재검증이 필요하다"며 반발했지만 박 당선인 측은 "현 정부가 민ㆍ관 공동조사를 통해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자격 시비 끝에 사실상 낙마한 것에 대해서도 양측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는 이 후보자의 인선에 박 당선인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박 당선인 측은 '이 후보자는 이 대통령의 인사'라며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의 국회 재의결을 놓고도 양측이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 이 대통령이 택시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박 당선인 측은 정부가 새로 내놓을 대체입법의 내용을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택시 노사 양측이 대체입법 내용에 수긍하지 않는다면 신ㆍ구 권력 간의 책임 공방이 거세질 예정이다.
이러한 신ㆍ구 갈등은 청와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정권을 잡은 직후 노태우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하나회를 숙청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5ㆍ18특별법을 제정해 12ㆍ12 쿠데타를 주도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을 처벌했다.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제청문회를 진행하면서 김영삼 정부의 경제라인을 대거 기소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정권 재창출에 해당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마찰음이 뒤따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진보에서 보수 정권으로 넘어가던 2007년에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하던 정부조직개편 내용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 김해 봉하마을에 가지고 내려간 대통령 기록물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새 정부가 반환을 요구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면서 양측 간에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오종탁 기자 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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