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재협의 움직임…박근혜 정부 'FTA 1년' 시험대
野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이유로 재협상 요구도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미국이 한미 외교가의 뜨거운 감자인 쇠고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수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초창기 미국과 쇠고기협상 문제로 역풍을 맞았던 점을 떠올리면 박근혜 당선인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3월 이후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1년을 맞이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통상정책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한미간 통상현안에서 쇠고기 문제가 다시 거론되는 건 최근 한국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점유율이 늘어난 측면이 크다. 25일 정부가 지난해 11월까지 집계한 수입 쇠고기 수급동향을 보면 미국산은 2011년 37.2%에서 지난해 40.6%로 늘었다. 2008년 수입이 재개된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캐나다산이 수입되기 시작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점유율은 여전히 증가추세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한국에 추가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는 걸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양국간 협상에 '한국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신뢰가 올라가면 개방수준과 관련해 다시 논의한다'는 내용의 협의조항이 있는 탓이다. 한쪽 국가가 원하면 상대 국가는 협의에 응해야 한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소비자의 신뢰라는 게 시장점유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나 미국이 쇠고기 문제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최경림 FTA교섭대표는 웬디 커틀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를 만나 쇠고기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사안을 논의했다. 커틀러 대표보는 현지 한국언론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미 쇠고기협상에 있는) 협의조항을 아직 쓰지 않았으나 가까운 시일 내 이 조항을 쓰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현재로선 "추가개방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미간 통상현안이 산적한 탓에 마냥 무시하기 힘든 처지다. 박 당선인 취임 직후인 3월이면 한미FTA 발효 1년을 맞아 양국간 통상이슈가 무더기로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문제 등 한국으로선 미국과 협상하며 얻어내야 할 게 많다. 그만큼 피치 못해 우리가 줘야할 것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야당 일각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등을 이유로 미국과 FTA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한 것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쇠고기협상과 한미FTA는 별개 사안이지만 다양한 협의 과정에서 쇠고기, 농산물, 자동차 등 중요사안들은 서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는 "서로 다른 협상을 연계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따로 없는 만큼 미국이 각기 다른 사안을 연관시킬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의회 차원에서 강하게 압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의회가 2008년 당시 쇠고기협상을 승인한 건 막스 바커스 미 상원의원이 요구한 협의조항을 넣는 조건부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바커스 의원의 영향력이 상당히 큰 만큼 미 USTR이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 봤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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