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분할안 국민연금 반대로 안갯속…4.2% 쥔 녹십자 캐스팅보트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ㆍ임성기 한미약품 회장…녹십자와 친분에 기대감
녹십자 "재무적 관점서 판단".. 찬성 땐 한미약품 표결 기권 가능성도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동아제약 분할안에 캐스팅보트를 쥔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25일 오전부터 사외이사들과 접촉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과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각자의 각별했던 친분관계에 기대감을 표하는 분위기다. 허일섭-강신호-임성기,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3인의 역학관계가 만들어낼 유기화합물이 어떤 모양새일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신호ㆍ임성기, 녹십자 선대회장과 친분…허일섭 회장의 선택은?
동아제약을 3개 회사로 분할하면서 박카스 사업을 비상장사로 두겠단 결정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였다. 분할 후 주식 스와프를 통해 취약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박카스 사업을 100% 비상장 자회사로 둠으로써 연 400억원 가량의 알짜 수익을 지주회사의 장기 신약개발 자금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 후 동아제약의 주식이 20% 넘게 오르며 시장은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24일 국민연금공단은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내세워 반대표 행사 뜻을 밝혔다.
녹십자는 동아제약 지분 4.2%를 보유하고 있다. 강신호 회장 측(14.65%), 한미약품(우호지분 포함 12.71%)에 비하면 적지만 국민연금의 반대로 캐스팅보트 역할이 주어졌다. 녹십자의 찬성은 28일 동아제약 임시 주총에서 분할안의 손쉬운 가결을 뜻하며, 반대나 중립은 '초박빙 승부'를 초래한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강신호 회장과 녹십자 선대회장의 각별한 친분을 생각하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지내던 시절,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부회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2009년 허 회장이 타계하자 강 회장은 신문에 추도사를 내 슬픔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독일에서 유학한 공통점 등으로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 회장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허 회장은 아헨공과대에서 수학하고 한독협회에서 함께 활동했다.
그러나 친분 측면에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도 할 말이 없지 않다. 동아제약의 분할을 반대하는 대표 세력으로 알려진 그는 허 회장 영결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한 인물이다. 추도사에서 임 회장은 "개인적으로 저와 특별한 친구이자 동반자로 깊은 우정관계인데 이렇게 영결하게 돼 애통한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다"고 슬퍼했다.
현재 녹십자는 선대회장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이끌고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순수하게 재무적 관점에서 분할안을 평가하고 찬반의견을 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섭 회장의 최종 판단에 제약업계 두 원로의 얼굴이 오버랩될 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녹십자의 행보에 사회적 관심이 쏟아지자 허 회장은 사외이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한 후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며 장고에 돌입한 상태다.
◆한미약품, 과연 반대표 던질까
녹십자의 결정과는 별개로 한미약품이 알려진 대로 반대표를 행사할지도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동아제약의 분할안은 강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지만, 그 효과 측면에선 매우 불리한 방식이다. 만일 박카스 사업을 비상장이 아닌 상장사로 돌릴 경우 주식 스와프 여력이 더 생겨, 지배력을 보다 확실히 강화할 수 있다. 즉 한미약품 입장에선 현 방식이 그대로 통과되도록 놔두는 게 차후를 노리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아제약 분할안을 확실히 무산시킬 수 있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겠으나 그렇지 못할 바에야 한미약품은 기권과 같은 방식으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려 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즉 녹십자의 찬성 때는 확실한 기권, 녹십자의 중립 혹은 반대일 경우에는 표계산을 통해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단 의미다. 2005년 동아제약 경영권 분쟁 때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한미약품은 당시 동아제약 주주총회에 불참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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