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주거복지 기준 높인 8만가구 공급계획 발표
'공터활용' 총론엔 호평.. "소외계층 더 고립된다" 우려도 나와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거=복지’시대가 열렸다. 조례를 개정해 취약계층의 주거문제를 보편적 복지영역으로 확대한데 이어 이제 임대주택의 주거기준까지 상향시켰다.(본지 1월10일자 ‘서울시, 아낌없이 주는 ‘박원순式 신주거복지책’ 시행’ 참조)
방법론에 있어 실효성은 여전한 문제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던 지금까지의 주택정책과 달리 주거복지 강화를 시정운영의 중축으로 삼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16일 서울시는 낡은 공공청사를 리모델링하거나 시유지를 활용해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내용의 ‘임대주택 8만가구+α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공급계획에는 주차장으로 쓰이던 고가도로 밑 공간을 활용한 1인 가구용 초소형 조립식 주택과 시립의료시설을 연계한 의료소외계층 돌봄형 주택이 포함됐다. 특히 박 시장이 사회 분야에서 강조해온 사회적기업과의 협업을 활용한 방식도 적용된다. 지금까지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해 저소득계층 주거복지까지 살피겠다는 전략에서다.
전체 공급량도 늘렸다. 지난해 공급물량을 당초 목표보다 2243가구 초과 달성한데 이어 올해 공급량은 2만2795가구(예정)에서 2만4982가구로 2000가구 추가했다. 입주 가능 물량 역시 1만7979가구로 지난해 1만7265가구보다 700가구 가량 자연스레 증가한다. 공공건설형 임대(1만2667가구)와 전세임대(2248가구) 및 장기안심(1565가구) 등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다.
◇‘주거=복지’시대 개막= 박 시장이 내놓은 이번 공급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주거복지의 보편화다. 단순히 공급원을 확보하고 공급량을 늘린게 아니라 주거복지에 대한 기준을 새로 규정했다.
앞으로 서울시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주거기준을 ‘최저’에서 시민 삶의 질을 고려한 ‘적정’ 기준으로 상향 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1인 가구 최소 전용면적 기준은 종전 14㎡(정부기준)보다 높은 17㎡로 상향된다. 2인은 26㎡에서 36㎡로, 3인은 36㎡에서 43㎡로 늘어난다. 주택 구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내놨다. 종전 기준에 따르면 방을 제외한 ‘식사실 겸 부엌’이 최소 구성안이었지만 이제는 ‘거실 + 독립주방’으로 바뀐다.
이는 1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서울특별시 주거복지 기본조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박 시장의 ‘신(新)주거복지책’으로도 불리는 해당 조례는 취약계층의 행정·재정적 지원 강화가 골자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는 물론 주거복지 향상에 나선 단체와 기관이 자금지원을 받는 것이 특징이다. 주거복지 연구·조사사업을 지원 대상에 포함한데 이어 주거복지 정책과 사업을 공정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주거복지위원회’ 설립 근거도 마련했다. 화재 등 재난으로 집을 잃은 긴급구조가구에 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주거복지 계획안은 5년마다 수립하기로 했고 주거복지 대상자들의 주택유형과 점유 형태 및 임대료 등에 대한 평가인 실태조사는 2년마다 실시하기로 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세부안을 마련해 임대주택 공급량과 공급원을 확보, 최종적으로 주거의 질을 높이는게 중장기 전략의 목표라는게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가도로 밑 임대주택?”= 문제는 실효성 확보방안이다. 주거복지의 기본틀을 갖춰 놨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8만가구 공급계획도 마찬가지다. 고가도로 하부 공간을 활용한 초소형 모듈러주택 공급이 논란거리다. 고가 하부 미활용 공간에 모듈러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인데 주변 교통량과 법률적 검토를 통해 영등포 쪽방촌 주변에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고가도로 밑 임대주택은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화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쪽방거주자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거주공간을 마련해주는데 의미를 둬야한다는게 서울시의 설명이지만 이는 박 시장이 추진하는 ‘소셜믹스’와도 거리가 멀다. 한 대형건설사 주택사업팀 관계자는 “분양단지와 임대단지를 통합하는 정책도 사회적 합의를 보지 못하고 논란이 불거져 있는데 다리밑 임대주택은 더 큰 사회적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공급에만 치중해 나온 탁상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시립병원과 보건소 반경 500m내에 독거노인과 거동불편자를 위한 ‘의료안심주택’을 짓겠다는 방안 또한 충분히 현실성을 감안하지 못한 사안이다. 물량 확보를 위한 전반적인 시장조사가 이뤄진 것도 아닌데다 일반 수요층에 대한 역차별까지 불거질 수 있다. ‘도전숙’이라 별칭 붙은 사회 초년생들의 커뮤니티 임대주택도 대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대학생임대주택’과 같이 타깃층으로부터 관심이 멀어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단순 원룸식 주거공간으로 주거환경 개선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된 임대주택 공급안을 바탕으로 내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더욱 다양하고 현실성 있는 공급원을 추가 확보할 방침이다”며 “1~2년 계획안이 아닌 중장기 전략인 만큼 임대주택 공급량과 주거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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