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역사적으로 절세미녀는 기구한 스토리를 갖는다.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이 그렇다. 여포와 동탁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결국 동탁의 죽음으로 스토리가 끝이 난다.
미녀는 남성들의 세계에선 정치권력의 과시이고, 경제력의 상징이며, 그 자체로 궁극의 목표다. 하나의 목표를 둘러싼 다수 남성간의 싸움은 본질적으로 생존을 둘러싼 경쟁이며 그래서 하나의 생존자의 뒤엔 다수의 희생자가 남는다. 절세미녀의 스토리는 결국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의 이야기다.
건축에서 초고층은 초선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빼어난 외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권력의 과시이고, 경제부흥의 상징이며,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처럼 그 자체로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초고층 건축의 시조는 기원전 2600년 이집트 쿠푸왕이 세운 146m 높이의 피라미드란 설이 있다. 피라미드는 잘 알려진대로 절대권력의 상징이다. 현존 최고(崔高) 건축물인 두바이 부르즈칼리파(828m) 또한 왕권과 과거 두바이 경제 부흥의 상징이다. 부르즈 칼리파는 우리말로 '왕의 탑(King's tower)'이란 뜻이다.
혹자는 마천루의 저주로 초고층이 경제 부흥의 절정을 상징한다는 점을 설명하기도 한다. 마천루의 저주란 역사적으로 초고층 건축이 붐을 이룬 뒤 반드시 경제 위기가 왔다는 설이다.
1930년대 초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완공후 세계 대공황에서부터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 건설 후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마천루의 저주를 뒷받침하는 스토리들은 부지기수다. 초고층이 경제 활황의 정점에서 지어지고 그 뒤 대공황과 같은 침체국면이 온다는 점은 경제순환주기 모형을 감안하면 저주가 아니라 당연한 선후 관계란 설명이다.
정치권력과 막대한 돈을 가진 남성들간의 경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치ㆍ경제 양면에서 다시 세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후난성에 부르즈칼리파보다 10m가 높은 왕웬빌딩을 건설 중이다.
국내에서도 초고층 경쟁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 여의도 63빌딩 등 50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이 이미 15곳이나 된다. 잠실 롯데슈퍼타워(123층) 용산역세권랜드마크타워(111층) 등 100층 이상의 건축물 건립도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초고층 건축물은 일부 권력ㆍ부유층의 전유 공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초고층의 주인 자리는 초선의 남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롯데그룹은 롯데슈퍼타워를 갖기 위해 고도제한 등 여러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수많은 난관을 거쳤다.
용산 랜드마크타워는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과 LG가 2007년 시공사 선정 당시 주인자리를 놓고 경쟁을 펼쳤지만 결국 아무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지금은 자금조달을 둘러싼 문제로 선매입한 코레일이 완공 시점에서 주인을 찾을 때까지 임시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130층 이상으로 지으려 했던 상암DMC 랜드마크타워는 막대한 투자자금에 비해 분양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업성 문제로 결국 주인도 찾기 전에 사업계획을 접어야 했다.
초선의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초고층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결국 그 것을 둘러싼 정치·경제 패권에 관한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김창익 기자 window@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