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승남]
토양염분 제거 기능으로 생물 다양성의 파수꾼
소리 없이 환경 정화…경제가치 농경지의 100배
함초는 우리나라 서남해안 해안지대 염전이나 개펄에서 자라는 명아주과의 1년생 풀이다. 우리말로는 퉁퉁마디로 일컫는다.
일정한 염분이 유지되는 곳에서 자라는 함초는 10~35㎝ 크기로, 줄기에 마디가 많고 가지가 1~2번 갈라지는 형태로 성장한다.
함초는 4~5월에 싹이 터 여름 내내 짙은 녹색으로 자란다. 7월 중순~8월 중순 사이에 희고 연한 녹색의 꽃이 피는데 보일 듯 말 듯 작다. 이 여린 꽃은 금세 열매를 맺는다.
8월 중순께 모두 성장한 함초는 9월 중순께에는 기온 변화에 따라 단풍이 들기 시작해 10월이면 단풍이 절정기에 이르러 해안을 붉게 물든인다.
염생식물의 제1세대라 할 수 있는 함초는 해안선을 기준으로 바닷쪽 갯벌에서는 단 한 뿌리도 찾을 수 없다. 바닷물과 개펄 속의 염분과 각종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라지만 내륙의 개펄에서만 자라는 특성을 지닌다.
함초는 간석지에서 맨 먼저 자라는 식물이다. 바다를 막아 조성된 간석지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고 비가 내리면서 함초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함초가 일단 간석지에 터를 잡으면 왕성한 번식력으로 크게 늘어난다. 3~5년이면 군락을 이룬 뒤 염생식물 제2세대 격인 해홍이나 나문재 등에 자리를 빼앗기며 점점 사라진다.
즉 함초는 자신의 생육으로 토양의 염분을 소멸시키며 자연천이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함초는 간석지 토양의 염분을 제거하는 일등공신이라 하겠다.
함초의 역할 덕분에 개펄과 간석지는 여러 식물들이 자라는 토양으로 바뀌게 된다. 함초를 비롯한 염생식물들은 소리없이 환경을 정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 개펄은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 5대 개펄의 왕국으로 함초 생산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비록 크기에서는 다섯 번째이지만 생태적·경제적 가치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10㎢의 개펄이 인구 10만명의 도시에서 쏟아지는 하수를 처리할 능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개펄의 유용성은 그 가치가 극히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개펄의 경제적 가치는 1㏊당 9900달러로 농경지 92달러와 견줄 때 100가 넘는다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 개펄에는 어류 200여 종, 갑각류 250여 종, 연체동물 200여 종, 갯지렁이 100여 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먹이사슬에 따라 100여 종의 바닷새가 개펄에 의지하고 살며, 김이나 굴 양식도 개펄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개펄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만약 개펄이 사라지거나 함초 등 염생식물이 도태된다면 해안은 어떤 모습이 될까. 대부분의 동식물이 사라져 그야말로 황량한 해안이 될 것이다. 환경정화 기능이 상실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개펄을 비롯한 서남해안 습지의 20%가 매립·간척 등으로 사라졌다. 앞으로 5년 이내에 남은 습지의 40%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해안 습지가 사라지면 함초와 나문재, 칠면초 등 40여 종에 달하는 염생식물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해안 환경이 황량하고 척박해지는 날이 코앞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에서는 이미 개펄정책이 ‘개발’에서 ‘보전’으로 바뀌고 있다. 개펄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의 개펄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어느 경우에도 개펄 매립을 막아야 한다. 매립된 개펄은 농지나 산업용지로 몽땅 전환할 게 아니라 일정 면적을 습지로 지정해야 한다.
건강한 개펄에서 함초 등의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며 살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양생물의 보고인 개펄을 유지할 수 있고, 환경정화 기능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승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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