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2013년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이다. 원달러 환율은 계속 추락해 우리나라의 성장 원동력인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외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2012년 11월 현재 우리 기업들이 폭풍전야에 놓여 있는 셈이다.
재계가 느끼는 위기감도 절박할 정도다. 우선 그룹 현안이 많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룹별 부딪힌 문제가 각각 다르고 해결책도 제각각이다. 이들 문제의 해결여부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비상경영에 돌입한 이유다.
삼성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초부터 위기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편중된 사업구조,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시황 회복이 더뎌지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요동치기 시작해 시설 투자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LG그룹은 차츰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전자계열사의 부진이 여전히 골칫거리다. 자동차 업계는 보호무역주의와 외산차의 견제를 위기로 보고 있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연비 문제로 거액의 보상금을 물게 된 이면에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외산차 업체들의 견제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업계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타격을 한몸에 받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수출이 급감하자 내부 경쟁력 양성을 위해 비상경영에 나서고 있다. SK, 한화 등은 정치권에서 총수들을 압박하고 있어 실제 경영 활동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 반도체투자 '속도조절'
삼성전자는 경기도 화성의 반도체 17라인 투자를 잠정 보류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시설 투자 계획도 내년으로 일단 미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황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추가 투자를 지양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삼성전자가 그동안 반도체, 디스플레이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선택이다. 그만큼 내년 경기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실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삼성으로서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안정적인 이익을 실현해 왔다. 그러나 최근들이 스마트폰 비중이 절대적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대한 투자가 지연되면 스마트폰이 부진할 경우 회사 전체의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삼성그룹의 가장 큰 위기는 자신이다.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매분기 경신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실적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스스로 위기감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 삼성전자가 거둔 지난 3분기 영업이익 8조1200억원 중 5조원 이상은 무선사업부가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핵심 부품 사업 역시 스마트폰 관련 매출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삼성전자는 무선사업부가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기, 삼성SDI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부품부터 각종 세트 제품까지 고른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던 삼성전자가 특정 사업에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마트폰 사업이 정체를 겪을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계열사 전체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무선사업부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황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플래시메모리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가격 인상안을 받아들이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력인 D램 시황 회복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이 같은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이 가장 큰 위기"라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며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와 같은 완제품들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부품 사업이 시황탓으로 정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대표 제품들의 경쟁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대차, 집중견제 비상
10년전 '싸구려 자동차'에서 오늘날 세계 5위권으로 급성장한 현대ㆍ기아자동차는 외부적으로 글로벌 메이커 간 경쟁과 견제 등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판매 차량이 많아질수록 고객 결함과 차량 결함 보고, 타 메이커의 견제 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몽구 회장은 안주하지 말고 품질 등 기본에 충실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현대ㆍ기아차는 최근 미국 시장에서 연비과장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물게 됐다. 도요타 리콜 사태와 같은 대형악재로 번지지 않도록 사측이 즉각적인 진화에 나섰으나 10여년간 쌓아온 글로벌 품질 신뢰도에 악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현대ㆍ기아차의 미국시장 월간 점유율은 2년여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국내에서는 역차별 논란마저 일고 있는 상태다.
국내 시장에서는 차를 많이 파는 동시, 안티고객도 많다는 점에서 브랜드 호감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를 위해서는 1위 업체의 오만함을 벗고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이다. 내부적으로는 비정규직 이슈와 내년부터 실시되는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등도 주요 숙제다.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등에 따른 생산량 감소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그룹 지배권의 승계 문제와 노사문제, 일감 몰아주기 해소 등은 매년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할 주요 숙제로 꼽힌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으로의 그룹 지배권 승계 문제는 핵심 관심사다. 정 부회장은 아직 핵심 계열사를 통제할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 선거 시점을 앞두고 일감 몰아주기도 이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10대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에서 현대차 그룹은 늘 첫손에 꼽히고 있다. 재벌개혁을 외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은 만큼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계열사가 결정하라
'견인불발(堅忍不拔)'
SK그룹은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며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보다 멀리 내다보고 그룹 의사결정 체제 개편을 준비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 오너리스크라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서두르지 않고 보다 멀리 내다보는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단기적 처방 위주의 솔루션이 아닌 그룹 의사결정 체제의 총체적 개편을 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구조를 지주회사 중심형에서 계열회사 분권형으로 전면 개편한다는 게 최 회장이 제시한 미래 청사진의 핵심이다.
최 회장은 '따로 또 같이 3.0을 통한 안정과 성장'을 주제로 최근 열린 '2012년 CEO 세미나'를 통해 제3의 도약을 천명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등 불확실한 대외 경영환경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경영 시스템을 계열사 중심형으로 새롭게 꾸민 것이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 이후부터 줄곧 고민해 온 각 계열사 중심의 성장 플랫폼을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옵티머스G에 사활건 LG
LG그룹의 위기는 주력계열사인 LG전자가 스마트폰에 늦게 대응하며 발생했다.
스마트폰 대응에 사실상 실패한 LG전자는 수익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지난 2010년을 전후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는 등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LG전자의 수익성 악화는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등의 수익 악화를 초래하는 등 그룹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에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의 최고경영자(CEO)로 긴급 투입되며 스마트폰 사업 정상화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했다.
구 부회장은 모바일(MC)사업부 조직개편과 스마트폰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 집중하며 삼성전자와 애플 같은 경쟁사들의 제품에 뒤지지 않는 옵티머스 시리즈를 시장에 내놨다.
특히 최근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지시로 만든 옵티머스G(일명 회장님폰)를 출시하며 좋은 시장 반응을 얻고 있지만 예전의 점유율을 회복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일단 LG전자는 옵티머스 시리즈를 통해 재기에 발판은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ㆍ4분기 실적도 연결 매출 12조3758억원, 연결 영업이익 2205억원을 기록하며 스마트폰 늑장 대응으로 인한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났다.
LG전자는 내년에도 옵티머스 후속 기종을 출시하는 등 휴대전화 사업 부활에 사활을 걸 계획이다.
◆포스코, 철강 죽어간다…조직수술
포스코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경제불황 장기화로 철강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탓이다. 과거 두자릿수를 유지해왔던 영업이익률이 한자릿수로 떨어진 데다 최근 글로벌 신용등급도 강등됐다. 그나마 포스코는 경쟁사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포스코 탄생 이래 처음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달 그룹 전사 운영회의에서 '초비상경영'을 내세우며 주말 근무 등 업무 강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실제 포스코는 주요 부서별로 주말 근무에 돌입했다.
정 회장은 지난 9월 멕시코 철강 콘퍼런스에 참석해 "세계 철강수요 증가 폭이 2010년 14.2%에서 올해 2.4%, 내년에는 3.1%로 크게 낮아질 것"이라며 "세계적인 경기부진이 2~3년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올 초부터 그룹 구조재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비핵심 계열사는 정리하거나 통합하고 철강ㆍ에너지 등 핵심 사업 위주로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이 구조재편 작업의 성공 여부에 포스코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사업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한화, 오너 컴백해야 위기 푼다
'견위수명(見危授命)'
그룹 총수 구속으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한화그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그룹 미래 신성장 동력인 태양광 사업의 글로벌 경기가 가격 경쟁 격화, 수요 위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공백까지 더해졌으니 말 그대로 '목숨이라도 바쳐야 할 형국'인 셈이다.
이라크에서 진행 중인 도시 재건 프로젝트 추가 사업 수주를 위해서라도 김승연 회장의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현 상황에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제 2의 중동 붐을 일으키겠다”는 김 회장의 포부만 있고 구체적인 비전은 아직 세우지도 못한 상태다. 오히려 한화 임직원은 최근, 이미 수주한 이라크 1차 주택건설사업에 대한 선수금(8억달러) 납입을 김 회장의 구속 상황을 이유로 이라크 정부가 지연시킴으로써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처럼 불투명한 그룹 미래에 한화가 기대를 걸고 있는 대목은 첫째도, 둘째도 김승연 회장의 역할이다. 실제 김 회장의 변호인은 최근 열린 2심 첫 재판에서 “방대한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의 방어권 보장과 김 회장의 건강상 이유, 부재에 따른 경영상 문제 등으로 조만간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명진규 기자 a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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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기자 yu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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