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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노벨 평화상 수상이 감동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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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은 오늘날 세계의 문제거리가 됐다. 부채위기와 그 처방으로 제시된 긴축정책으로 유럽 각국의 경제는 피폐해졌다.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유럽연합(EU)이 해체될 것인지를 두고서 내기를 벌이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경제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나라와 어려움에 놓여 있는 나라들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잘사는 나라는 내부에서는 더 이상 파산한 나라들의 짐을 지기 싫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고 , 경제적 위기에 놓여 있는 나라들은 유로존을 유로존(EU의 단일화폐인 유로를 국가통화로 도입하는 국가)을 탈퇴하고 자국 화폐를 도입해 환율을 평가절하해 국가 경쟁력을 되살리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EU는 해체되지 않고 지금 이 순간까지 꿋꿋이 버텼다. 그리고 12일 노벨위원회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EU를 선정했다.

EU는 경제 공동체를 표방하며 출범했지만, 근본 설립 목적은 '유럽의 평화'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며 온 유럽이 황폐화 되고 셀 수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 더 이상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을 모색하면서 만든 것이 바로 EU였다. EU는 1958년 6개의 나라들이 경제적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유럽경제공동채(EEC)를 만든 이후 취급하는 분야와 소속 국가를 넓혀 오늘날 회원국 27개국, 인구 5억명의 지역공동체로 성장했다.


토르뵤른 야글란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EU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알리면서 "EU의 안정화 노력이 전쟁의 대륙이었던 유럽을 평화의 대륙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며 "과거 독일과 프랑스는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지만 오늘날 두 나라의 전쟁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평화를 고려하면 과장된 말은 아니다.

노벨 평화상의 선정 기준을 세계 평화에 기여한 정도로만 본다면 EU의 수상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화에 기여를 한 특정한 개인이 아닌 거대한 조직이 노벨 평화상의 영광을 누리게 된 데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EU와 같은 조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에는 유엔이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 함께 수상했으며, 유엔난민기구(UNHCR),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엔평화유지군, 국제노동기구(ILO), 유니세프 , 국경없는의사회, 엠네스티 등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이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에코 모스크비(모스크바의 메아리)'는 알렉세이 베네딕토프는 EU 수상에 대해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며 "EU에 노벨 평화상 수상의 영광을 뺏긴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U의 수상이 감격스러운 것은 그동안의 전쟁 방지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 노력이 평가 받았다면 이 상의 노벨 평화상은 2012년 이전에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올해 EU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EU국가와 국민들이 보인 연대의 정신 때문이다. 빈국과 부국 사이에 수많은 격론과 정치구호들 속에서도 EU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대책들(채권매입프로그램, 각종 구제기금 등)을 쏟아내면서 EU를 굳건히 지켜냈다.


올해 상반기 내내 국제 경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인물 중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있다. 독일이 자기 이익만 챙기고, 유럽의 위기를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숱하게 제기됐다.(아마도 올해 상반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사람은 그녀일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언제나 '노'를 외치는 사람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 양보를 했던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 국민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돕는 것에 대해 질색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독일 정부가 손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은 독일의 뜻 보다는 독일 국민들에게 협력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정치의 기술의 성격이 컸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가진 독일은, 위기 이후 줄곧 부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행위자라면서 희생을 요구받았다. 그동안 유로존 재정위기 과정은 재정파탄국가의 자기 희생과 독일의 양보 사이의 줄다리기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양보를 한 것은 독일이었다. 유로존의 부채위기 해결 노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숱한 위기 속에서도 여지껏 유로존이 붕괴하지 않았다는 것은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EU에 대한 독일에 의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 재무장관으로 독일 정부의 각료회의에 참가했을 당시, 독일의 장관들이 모든 각료회의를 EU 헌장 낭독과 함께 시작했을 뿐 아니라, EU 관련 정책을 책임지는 '유럽장관'이 가장 먼저 발언권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자신을 나치라고 부르는 그리스에 달려가 그동안 개혁의 성과를 치하하고, 그리스가 EU에게서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스 시민들은 그녀를 비판했지만, 국제사회는 메르켈의 그리스 방문을 계기로 그리스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위기의 국면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밤을 세워가면서 정상회담을 벌였고, 어려움을 빚을 때에는 EU 기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서로 상이한 거시경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공동의 화폐를 이용한 것은, 태생적인 모순이라는 지적에 맞서 EU지도자들은 더욱 상위의 정치동맹으로 격상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럽 시민들은 자신들이 세금이 다른 나라를 돕는 데 쓰여지는 것을 인내하고 참아냈다.


그동안 인류와 유럽의 역사에서는 최악의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져왔다. 1930년대 대공황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가 역사 속에 등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정치적 파국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EU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유럽 각국에서는 파시즘 정당들이 세력을 얻었지만, 정권 장악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화폐를 쓰는 이웃들이 하나가 되서 고통을 나누고 도움의 손길을 내세우는 과정은 진짜 '우리'가 되가는 과정일 것이다. 각국이 보인 연대의 정신, EU지도자들의 헌신,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 각각 EU시민이라는 자각이 오늘날 유럽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노력들을 격려하기 위해 노벨 위원회는 EU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EU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정당하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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