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생각보다 국정감사가 싱겁게 끝났습니다. 예상 보다 일찍 끝나 다행입니다만 우리가 준비한 것을 전부 다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9일 오후 8시를 약간 넘긴 시각.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금융감독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가 마무리되자 한 중간간부가 밝힌 개인적 소견이다.
전날 금융정책기구인 금융위원회의 국감이 밤 11시15분께 마무리된 것과 비교하면 금감원 국감은 뜻밖에(?) 초저녁에 막을 내렸다. 이 간부에게는 충격이었나보다.
국감이 싱겁게 막을 내렸다는 금감원 관계자의 지나가는 한마디는 기자 입장에서는 국감을 곱씹는 기회가 됐다. '대선의 전초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점 때문이다.
이날 금감원 국감에서는 가산금리, 보험사기 등 다양한 금융 관련 이슈들이 다뤄졌다. 하지만 모두 부(副)에 그쳤다. 대신 주요 무대는 대선주자들이 차지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조카사위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의 배임 의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사건수임 등이 장식한 것이다. 이날 출석을 요구받은 증인들 역시 대선주자 의혹 규명용이 대부분이었다. 금융에서 한발짝 떨어진 이슈를 놓고 여야는 상대 후보 약점을 공격했다.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국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날 정무위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국감장에서 "국감이 대선후보를 간접적으로 평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감을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짐작케 하는 발언이다.
파헤쳐야 할 금융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국감을 대선주자 검증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점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재계순위 30위권의 중견그룹인 웅진그룹 계열사가 지난달 말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대기업 재무의 관리 감독 등을 묻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국감과 관련해 "대선주자 공방이 다양한 금융 이슈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촌평했다. 예상 질의 가운데 가계부채 문제만 적중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쳇바퀴 같은 대선주자 의혹 규명에 정작 국민들의 알권리는 무시당한 셈이다.
국회의원에게 국감 본연의 업무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문제였을까. 복잡한 생각이 가득한 국감 후기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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