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지금 그리스 국민들이 가장 미워하는 정치 지도자는 그리스 여야 정치인이 아니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다. 최대 채권국인 독일이 그리스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강도 높은 긴축과 공공부분 구조조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의 9일 그리스 방문을 앞두고 벌써부터 분노한 그리스 국민들의 시위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메르켈의 이번 방문은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추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의 ‘트로이카’ 채권단과 협상 중인 그리스 정부는 메르켈의 방문 성사로 지원의 물꼬가 트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메르켈 총리가 이번 그리스 방문에서 아무런 선물도 들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해 어떤 경우라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고통받는 그리스 국민들에 대한 유감도 표명하겠지만, 추가 자금지원은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현 그리스 정부의 긴축프로그램을 더욱 강력히 지지, 즉 압박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8일 룩셈부르크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회의가 열렸으며 9일에는 EU 27개국 재무장관회의가 열린다. 18일과 19일에는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이에 따라 EU와 각국은 그리스에 채권단과의 조속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긴축조치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좌·우파 진영 모두에서 ‘반독감정’이 극도로 고조됐다. 지난 제2차세계대전 당시 그리스가 나치 독일군에 점령당했던 역사까지 끌어와 메르켈 총리를 나치에 빗댄 풍자화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 그리스 채무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사실상 독일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증을 섰다는 점은 무시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구제금융 중단을 주장하는 그리스 제1야당 급진좌파연합(시리자)와 양대 노동조합 등은 메르켈 총리의 방문 날짜에 맞춰 공공·민간부문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메르켈 총리는 국내에서도 그리스 지원에 대한 강한 반대 여론에 직면해 있다. 집권 보수연정 내에서도 비관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FT는 독일의 이같은 반감에 대해 앞서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서독인들이 상당한 ‘통일 비용’을 치러야 했던 과거가 다시 반복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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