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해도 끝이 없고.. 해도 해도 부족하네..” 지난 3일,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남긴 트윗이다. 한 밤의 트윗은 한 팔로워의 멘션에 답하며 “그러게요.. 이제는 90분 편성이네요.. 시작은 그 절반이었는데..”라는 아쉬움으로 이어졌고, “(방송이) 느슨해질 수 밖에요.. ㅜㅜ”라는 반성으로 끝났다. 최근 여러 미디어들은 <무한도전>이 끝날 때마다 “의미심장”이라는 표현과 함께 제작진의 메시지를 해석하려 했다. 9월 23일 방송에서 길에 대해 ‘힙합문어도 퇴출’이라는 자막을 단 것은 길의 <무한도전> 자진 하차 결정에 따른 논란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오늘 방송 후에도 의미심장.. (중략) ..내용과 흐름 속에서 (자막을) 이해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던 트윗을 남긴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문제를 쇼 바깥의 논란이 아닌 안의 완성도에서, 제작진과 시청자의 정서적 소통이 아닌 물리적인 시간에서 찾았다.
‘개그학개론’ 편에서 출연자들은 게스트 이나영과의 스토리 외에 단편적인 게임들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반복적인 게임은 출연자들이 벌이는 순간적인 해프닝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다. 대신 출연자들과 여성 게스트인 이나영이 보여주던 관계의 변화는 상당부분 중단됐다. 유재석이 ‘개그학개론’에서 계속 “시간 없다, 게임하자”며 출연자들을 독려한 것은 농담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게임이든 해야 90분 편성을 맞출 수 있다. 반면 에피소드 안에서 기승전결을 갖추는 <무한도전> 특유의 스토리텔링은 일정부분 포기해야 한다.
<무한도전>이 미묘하게 달라진 이유
늘어난 시간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중단된 시간이다. MBC 파업으로 인한 긴 공백은 <무한도전>이 몇 년 동안 쌓은 역사를 중단시켰다. ‘하하 VS 홍철’은 하하와 홍철이 몇 년 동안 쌓은 관계에서 비롯됐다. 제작진이 누구나 아는 두 사람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춰 1개월 이상 스토리를 진행시키자 사소한 자존심 싸움이 대형 이벤트로 발전했다. 그 때 <무한도전>의 새로운 에피소드는 지난 에피소드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수련 끝에 캔 뚜껑 따기에 성공한 하하처럼 출연자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나 파업 후 <무한도전>은 현재에 가져올 과거가 없다. 하하와 홍철의 형, 동생 문제는 이미 지난 이야기다. 시청자는 정준하가 어떤 계기로 하하와 길의 지지를 받게 됐는지, 유재석이 언제부터 출연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용왕’이 됐는지 알지 못한다.
복귀 후 <무한도전>이 ‘개그학개론’, ‘무한상사’ 등의 상황극이나 ‘니가 가라 하와이’, ‘말하는 대로’ 같은 두뇌싸움이 가미된 추격전의 변형을 자주 하는 것은 이런 단절 때문이다. 상황극과 추격전은 이전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에피소드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 또한 ‘말하는 대로’에서 발생한 미션들은 출연자들이 두 팀으로 나눠 ‘강남스타일’의 패러디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했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용왕’ 유재석과 정준하가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발견됐다. 사건을 통해 캐릭터가 발견되고, 캐릭터의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사건이 만들어진다.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형식의 에피소드 속에서 다시 한 번 쇼의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무한도전>이 과거와 미묘하게 달라진 이유다. 노홍철은 ‘말하는 대로’와 ‘니가 가라 하와이’에서 모든 출연자와 대립하는 역할을 했다. 캐릭터가 숙성된 파업 전 <무한도전>은 여러 캐릭터들이 서로의 관계에 따라 물고 물리는 대립을 벌였다. 때론 ‘TV 전쟁’처럼 그들의 역사를 따라온 시청자들까지 프로그램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 <무한도전>은 특정 출연자끼리 대립할 관계가 아직 무르익지 못했다. ‘사기꾼’이라는 명확한 캐릭터를 가졌고, 그만큼 능동적으로 사건을 벌이는 노홍철만이 예외다.
<무한도전>은 당장 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다
‘강남스타일’ 패러디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은 뮤직비디오를 위해 중국에 가고, 온갖 분장을 하고, 철야 촬영을 하고, 노래까지 녹음했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작년의 ‘조정 특집’이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처럼 감동코드를 넣지 않는다. 조연출이 쓰러질 뻔 했다던 빡빡한 스케줄은 가벼운 잡담으로 처리되고, 태풍이 오던 날 비를 맞아가며 춤을 춘 고생담은 출연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가린다. 지금의 <무한도전>은 마치 차승원과 함께 연탄을 나르던 그 때의 느낌을 훨씬 복잡하고 큰 스케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일단 웃기고, 호감을 얻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무한도전>만의 서사를 재건해야 한다. ‘하하 VS 홍철’처럼 보다 부드럽고 긴 호흡의 에피소드는 그 다음에야 보다 능숙하게 진행할 수 있다. 유재석의 말처럼, 지금 <무한도전>은 당장 해야 할 숙제들도 너무 많다.
김태호 PD는 얼마 전 “익숙한 것들, 당연하던 것들.. 그 보다 낯선 것들, 유니크한 것들을 찾던 몸부림과 고민들.. 어느 덧 그 자체가 다시 익숙함이 되어버렸다..”라는 트윗을 남겼다. 그리고 마치 ‘말하는 대로’처럼, 그의 고민은 진짜 미션이 됐다. 그는 한 에피소드 제작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고, 동시에 최대한 빠르게 <무한도전>을 과거처럼 풍부한 캐릭터와 역사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기나긴 과도기뿐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새로운 도전의 핵심에는 길이 있다. 길은 복귀 후 <무한도전>에서 정준하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나름의 세력을 만들었고, ‘강남스타일’ 패러디에서 ‘해양생물 전문’이라는 캐릭터도 얻었다. 지드래곤이 출연한 ‘무한상사’에서 ‘3년 인턴’이지만 여전히 정규직이 아닌 길의 캐릭터는 가장 늦게 쇼에 합류한 그의 위치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김태호 PD는 길에게 과거보다 더 자주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길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길은 출연자들이 함께하기로 했던 <슈퍼콘서트7>의 무산 과정에서 논란의 핵심이 됐다. 그는 앞으로의 <무한도전>에서도 그 짐을 안고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김태호 PD는 쇼 안에만 집중하며 길의 캐릭터를 발전시킬까, 아니면 쇼 바깥의 정서까지 생각하며 시간을 더 벌어보는 방법을 생각할까. 어느 쪽이든 그에게 당분간 심심치 않을 도전과제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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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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