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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나의 로즈' 장미란에게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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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나의 로즈' 장미란에게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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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마지막 3차 시기.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바벨이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170㎏. 예전 같았으면 가뿐하게 들어올렸을 그 무게를 있는 힘을 다해 들어올려봤지만 그녀는 더이상 힘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실패할 것을 알고도 마지막 승부를 했을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力士)는 끝내 바벨을 떨어뜨렸습니다. 당황한 듯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이내 숨을 가다듬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 뒤 바벨과 가벼운 손 키스를 나눴습니다.

'로즈란' 장미란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올림픽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장미란은 170㎏보다 몇배는 더 무거웠을 부담감도 내려놓았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옮긴 장미란은 펑펑 울었습니다. 아쉬운 결과를, 국민들에 대한 감사를, 그간의 회한을 가슴에 꾹꾹 눌러서 소리내지 않고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뒤 그녀는 말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보다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 나와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실망시켜 드렸을 것 같아 염려스러워요"


처음부터 힘든 싸움이 예상됐습니다. 두해전 교통사고를 당한 장미란의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왼쪽 어깨, 허리, 무릎, 팔꿈치까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회복이 더뎌지자 그냥 부상을 안고 훈련을 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하루에 수천 kg의 쇳덩이를 들었다 놨습니다.


장미란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너무 컸습니다. 모든 이들이 금메달을 따주기를 원했기에 그녀는 아프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 모든 부담을 안고 "올림픽 2연패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얘기해야했던 그녀의 심정을 백번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기적적으로 170㎏에 성공해서, 그래서 동메달이라도 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오늘 연습때 한 것만큼 딱 한 것 같아요"라는 장미란의 말처럼 역도는 정직한 운동이었습니다. 연습 때 안 되던 무게가 실전에서 될 순 없었습니다.


'장미란의 실패'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선 끝까지 받아들 일 수 없는 건 아마도 마지막까지 바벨과의 싸움에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치열하게 임했던 그녀의 정직함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어깨 위로 팔을 들지도 못할 몸으로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부응하려고 이를 악물었을 그녀는 결코 기적이나 요행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실패까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장미란이 국민들에게 주었던 환희와 감격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2005년부터 4년 연속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챔피언이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5년 넘게 세계 여자 역도를 지배한 여제(女帝)였습니다. 용상 세계 기록(187kg)은 여전히 그녀의 것입니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든, 아니면 제2의 인생을 살건 그녀의 앞길에 더이상의 눈물 없이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보여줘서, 또 땀과 노력의 정직함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나의 로즈' 장미란.






김경훈 기자 sty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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