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줬으면 하는 남자. MBC <아이두 아이두>의 조은성(박건형)을 보면 볼수록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과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맞선녀에게 퇴짜를 맞기 위해 일부러 마스카라를 꺼내 화장하는 시늉을 할 정도로 결혼 생각이 없었던 남자가 갑자기 한 여자(황지안)에게 푹 빠졌다. 여자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예비 사위 노릇을 자처하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직접 그 여자의 초음파 검사까지 해줬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 ‘이런 남자가 세상에 어딨나’라고 생각”한 박건형의 첫 번째 과제는 조은성을 남자 대 남자로서 이해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아무 상관도 없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관계를 끊어버려야 하는 건지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라며 헤어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중요한 건 그 지점이었어요. 세상에 여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조은성에게는 황지안 밖에 안 보이는 거죠.”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 박건형은 <아이두 아이두>를 통해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새로이 발을 디디는 모든 이가 그러하듯, 2001년 뮤지컬 <더 플레이>로 데뷔한 이후 뮤지컬,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의 폭을 넓힌 박건형 역시 기존에 지니고 있던 재능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새로 시작한 영화와 원래 하던 뮤지컬이 둘 다 실패했을 땐 배우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무대와 영화, 드라마에서 모두 나를 받아주지 않아 어딜 가나 내가 바보가 된 느낌, 내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 절 무섭게 했어요. 그때의 절망감이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이 겪은 절망감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헤드윅> 초연 당시 출연을 고사하던 그가 이번 <헤드윅>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 것은 그러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헤드윅>을 하지 않으면 평생 ‘헤드윅’이라는 단어나 공연 포스터만 봐도 움츠러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그렇게 살기는 싫더라고요.” 여전히 두려운 감정으로 <헤드윅>을 준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건형이 ‘이유 없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추천해왔다. 박건형처럼 자기 앞에 스스로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는 사람들이 저장해두면 좋을 플레이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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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orah Jones의 <1집 Come Away With Me>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는 재즈나 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곡이죠. 노라 존스를 좋아하는 국내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으로 꼽는 곡이기도 하고요. 그의 매력적인 보이스가 참 인상적이에요. 언제 들어도 행복하고 감미롭고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잖아요. 자주 흥얼거리면서 즐기는 곡인데, 특별한 연인이 생기면 가장 들려주고 싶은 노래에요. (웃음)”
2. James Morrison의 < Songs For You, Truths For Me >
“마이클 잭슨의 곡으로도 유명한 ‘Man In The Mirror’는 원곡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죠. 제임스 모리슨의 거친 보이스가 음악과 잘 어우러져서 매력을 발산하는 것 같아요. 그만의 목소리가 그의 음악을 더 빛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에도 제임스 모리슨의 목소리에 빠져서 자주 흥얼거리면서 듣게 되는 곡이에요.”
3. Steppenwolf의 < Steppenwolf >
“대중 분들이 <아이두 아이두>의 조은성으로만 절 만나셨다면 제가 바이크 타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못하시겠지만, 사실 전 자주 바이크를 타는 편이에요. 바이크를 탈 때의 상쾌함, 스릴이 저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거든요.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차에 있는 시간이 많으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바이크를 탈 때의 기분을 느끼곤 해요. 심지어 바이크를 타고 질주할 때의 그 생생함마저 느끼게 해주는 노래랍니다. 요즘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면서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4. Police의 < The Police >
“1980년대 곡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멜로디와 리듬이 정말 세련되고 정리돼있다는 느낌을 받은 곡이에요. ‘Every Breath You Take’는 연인들의 사랑을 그리는 노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전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특히 <아이두 아이두>를 찍으면서 사랑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남자와 여자는 왜 싸우는 것일까, 결혼이란 무엇일까 라는 건 평소에도 하는 고민이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는 아예 24시간 했던 것 같아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사랑에 대한 질투, 사랑을 하면서 잃어버린 것들, 집착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책에서 보는 사랑 말고 진짜 사랑은 뭘까요? 하하.”
5. Maroon 5의 < Hands All Over (Revised Asia Deluxe Ver.) >
“퀸의 노래로도 정말 유명한 곡이죠. 퀸과 마룬 파이브 모두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밴드라 비교가 많이 되지만, 두 밴드의 스타일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마룬 파이브의 목소리는 언제나 환상적이지만 이 곡에서는 특히 눈에 띄게 더 황홀해요. 경쾌한 락앤롤 스타일이 절 들뜨게 만들고 유쾌하게 해주거든요. 퀸보다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창법도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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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을 위해 “외적으로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두 아이두>와 <헤드윅>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7kg을 감량했다는 박건형. 그러나 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제 외적인 부분이 텍스트에 방해가 되면 안 되는데, 저의 딱 벌어진 어깨가 참 거슬려요. (웃음) 정말이지 뼈를 깎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최대한 근육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기 안에 쌓여있는 절망감과 두려움을 토대로 헤드윅을 완성해가고 있는 박건형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관객 앞에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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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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