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유령>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한다. 조현민(엄기준)은 아버지를 죽게 만든 조경신(명계남)을 밀어내 세강그룹의 회장이 되고, 김우현(소지섭)은 아버지 김석준(정동환)처럼 경찰로 산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버지와 다르게 산다. 조경신은 정치 비자금으로, 조현민은 해킹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 정관계를 움직인다. 김석준은 조경신의 돈을 받고 비리에 가담했고, 사고로 죽은 김우현의 신분으로 사는 박기영(최다니엘/소지섭)은 IT 지식을 통해 조현민의 진실을 수사한다. 조경신과 조현민의 대화는 두 사람, 또는 두 세대의 차이를 보여준다. “돈이 가장 많은 놈이 이기게 돼 있다. 그게 자본주의야”, “13년 전에는 돈이 통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닙니다.” 결국 조경신은 조현민의 협박에 자살한다. “나도 이제 한물갔구만”이라는 넋두리를 남기고. 돈 많은 아버지 세대를, 지식과 정보가 많은 아들 세대가 이겼다.
자본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진 지식의 시대
지식 산업이 전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IT 기술로 전 세계적인 영웅이 됐다. 네티즌들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모여 강연하는 TED 동영상을 쉴 새 없이 본다. <유령>은 아버지 세대의 산업적 기반이 아들 세대에서 새롭게 변하는 시대에 일어난 충돌에 관한 사건 파일이다. 정보화 시대의 시작이라 해도 좋을 1999년의 13년 후, 조현민의 지식이 조경신의 부를 이겼다. 안철수가 유력한 대권 주자로 주목받는 것은 <유령>이 그린 세상과 겹친다. 안철수는 땅을 사고 공장을 짓는 대신 IT 기술을 경영과 융합해 부를 창출했다.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처럼, 안철수는 자신의 개인사 대신 머릿속의 생각을 강조한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가 출연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시청률은 급등했다.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거는 대중이 그만큼 많아졌다. 반면 지금의 대통령은 이명박이고, 또 다른 유력 대권 주자는 박근혜다. 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을 내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은 산업화 시대의 정책이다. 박근혜는 그 산업화 시대를 시작한 독재자의 딸이다. 4대강 개발이 부를 만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키보드를 두들겨 돈을 버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수첩 대신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명박 대통령이 왜 라디오 연설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뿌리깊은 나무>, <추적자>, <유령>에 이르는 SBS의 드라마들은 정보화 시대가 낳은 두 세력의 갈등과 권력이동에 관한 일종의 3부작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사대부는 그들 이외의 계층이 훈민정음으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을 극렬하게 막았다. <추적자>의 권력자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 했다. <유령>은 이 대립의 결과다. 조현민은 지식과 정보의 힘으로 구세대 권력자인 조경신을 이겼다. 그러나, 조현민은 계층 간의 권력 변화는 부정했다. 조현민이 아무리 죄의 증거를 없애도 정보는 끊임없이 복제, 전파된다. 박기영은 조현민보다 권력은 없지만, 지식과 기술로 조현민의 죄를 입증한다. 정보화 시대는 권력자의 얼굴뿐만 아니라 권력의 속성도 바꾼다. <추적자>에서 가진 것 없는 백홍석(손현주)은 소형 카메라와 디지털 동영상 제작, 인터넷 전송을 통해 대선후보 강동윤(김상중)의 죄를 밝혔다. 기술과 지식을 가지면 형사가 권력자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지식과 정보가 있다면, 시민이 권력자를 감시할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해 위키리크스와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가 시도한 권력자들에 대한 폭로는 드라마의 바람이 현실로 실현될 수도 있다는 증거다.
무형의 가치는 쓸모없는 것으로 평가받는 시대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져온 권력이동의 가능성은 기존 권력의 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18일부터 뮤직비디오 심의가 시작되면 모든 뮤직비디오는 연령 등급 심의 대상이 되고, 어길 경우 2천만원이하의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티저 영상 공개부터 음원 유통, 뮤직비디오 공개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로 진행되는 요즘 가요계의 프로모션은 뮤직비디오 심의가 늦어지면 결국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불가피하게 바꿔야 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 추가 촬영을 하는 것도 재심의를 받기 전까지는 할 수 없다. 인디 뮤지션부터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까지 모두 뮤직비디오 심의를 반대하는 이유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산업적인 부분에서도 이 제도에서 합리적인 부분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뮤직비디오 심의가 시작되면 어쨌건 전 국민은 인터넷에 올리는 것에 대한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물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영상등급위원회는 해외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가는 뮤직비디오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 올라가는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일일이 심의할 수도 없다. 미디어의 다양화로 가요프로그램 무대조차 모두 심의하지 못한 채 신고 접수된 무대만 심의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이 새로운 시대의 기술과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들은 통제 불가능해진 기술과 생활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에 폐기된 제도로 정보의 유통 창구를 단일화 시켰다.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누구나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인터넷에 올리는 기술과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 됐다.
기술이 기존 체제를 흔든다면 아예 없애 버려라. 그 점에서 뮤직비디오 심의는 정부 주도의 러다이트 운동처럼 보인다.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은 기계를 부수는 것으로 시대에 저항했다. 정보화 시대의 한국 정부도 권력과 제도를 통해 기술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새로운 시대에 합류한 사람들이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키는 만큼, 기존 권력의 더 극단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조경신이 조현민의 기술도 어쩌지 못할 만큼 엄청난 돈으로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새로운 시대를 선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경신과 조현민은 물론 박기영 같은 사람까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만큼 성장한 이 시대는 점진적인 변화 대신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뮤직비디오 사전 심의에서 보듯,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 지금의 권력은 절충 대신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은 기계는 부숴도 기술자의 머릿 속에 있는 기계의 설계도는 파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지식은 인터넷 어딘가에 보관 되어 있다. 지식과 정보의 전파는 막을 수 없고, 결국 세상은 바뀐다. 이번 만큼은 아닐지라도. 13년 후에는, 그리고 다시 13년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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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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