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세율조정에서 재벌해체 대규모증세로... 국민은 일자리 더 원하는데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대선을 4개월 남기고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쟁이 산으로 가고 있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눈높이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목적과 수단이 혼동된 채 갈짓(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재벌개혁과 세율조정이라는 당초의 목표도 사실상 재벌해체와 대규모 증세로 구체화됐다. 9월 정기국회에서 정치권과 재계ㆍ정부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7일일 한 라디오에 나와 정년 60세 연장 법제화 강행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31일 정당대표라디오연설에서 공식 언급하고 재계가 반발하자 내놓은 답변의 성격이 짙다. 정년연장은 이미 민주당에서 법안을 발의해 추진해왔지만 여당이 뒤늦게 주도권선점에 나선 것.
새누리당은 야당이 요구해온 추경에 대해 반대했다가 갑자기 이한구 원내대표가 앞장서 추경 찬성으로 돌아섰다. 재정부는 여전히 국가재정법 상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이다.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추경이 만시지탄"이라면서도 "서민경제 위해 추경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밀어붙이면 기획재정부로서도 반대만 할 수없게 된다.
재벌개혁을 놓고는 여야가 "내가 제일 잘나가(제일 강해)"라는 경쟁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대표 남경필 의원)은 이달 20일까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와 은행중심의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원의 분리)에 보험영역을 담은 금산분리 강화법안을 잇달아 내놓을 예정이다.
이 모임은 이미 1호(횡령 배임 재벌총수에 집행유예 제한)와 2호(일감몰아주기 근절)법안을 발의했으며 최근 3호 법안(신규순환출자금지와 순환출자의결권제한)을 내놓아 재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3호 법안을 두고는 모임 내에서도 둘 중 하나만 우선 발의하자는 의견도 나왔고 공정위와 입법조사처에서도 대기업의 투자위축 등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하거나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출총제 도입보다 효과적이고 파급력이 큰 법안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해 강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한 발 더 나아가 출총제 부활과 함께 신규는 물론 기준 순환출자도 모두 금지키로 한 법안을 내놓았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포럼(대표 이종걸 유승희의원)소속 김기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출총제 대상범위를 당내 논의된 내용보다 더 확대해 30대 기업집단까지 넓혔다. 여야는 재벌규제법인 기업집단법 제정의 필요성에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어 법제화 가능성이 높다.
세제분야에서는 민주당이 전날 '새누리당보다 더 강하다'며 1%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증세 카드를 들고 나왔다. 현행 38%인 소득세 관련 최고세율 적용 대상을 연간 근로소득 3억 원 초과자에서 1억 5000만 원 초과자로 낮추고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재 22%에서 25%로 원상회복하는 내용이다. 대신 서민과 중산층의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 저축상품에 대한 이자소득 비과세와 교육비 소득공제 확대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대기업의 연구인력개발비와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축소까지 거론하며 대기업을 압박했다. 현재 비과세인 파생상품거래의 경우 새누리당은 0.001%를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0.01%의 세율을 적용키로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향해 빨리 한배를 타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후보는 법인세율 조정을 반대하며 대기업 주장에 동조하고 있고 전경련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치한다며 법인세 세율 조정에 반대하고 있다"며 "박 후보가 외치는 경제민주화 복지확대가 진정성 있다고 하면 민주당 세제개편안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낸 정운찬 전 총리는 라디오에 나와 "(경제민주화에 대해)새누리당은 성의가 없는 것 같고, 민주당은 능력이 부족하다"며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데 정치권은 경제민주화의 목적과 수단을 혼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정부의 중점 정책 사항에 대해 국민들의 36.0%가 물가 안정을, 32.3%는 일자리 창출을 꼽은 반면 경제민주화는 12.8%, 복지 확대는 6.7%에 불과했다"며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 관련 대기업 규제정책을 제시하는 것과 국민 눈높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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