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19일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에서 대선출마 의지를 한 층 강하게 밝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책을 통해 새누리당 및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야권과의 정책적 접점을 보여줬다. 한때 자신에게 공동정부를 제안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는 '교감'에 가까운 동질성을 나타냈다. 이는 에너지 구상과 복지 구상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안 원장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펴낸 책에서 세계적인 탈원전주의자이며 신재생에너지 전도사로 불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수 차례 언급한다.
"손 회장은 원래 원전에 대해 중립적 입장이었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원전 폐기' 입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해요…신재생에너지로 아시아권 전체를 묶는 '슈퍼그리드'를 만들 구상도 하고 있더군요."
"지난 2월 일본 출장에서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씨를 만났는데 원자력 에너지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하더군요…눈앞의 이익이라는 논리로만 따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가 됐는데요, 지금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거나 사람들에게 위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국가가 경제논리만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는 현 정권의 원전 진흥 정책에 대한 반대 뜻을 밝힘과 동시에 태양광ㆍ풍력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전기밭 프로젝트'로 일본 현지에서 수 조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진행중인 손 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을 관통하는 신재생 전력망 '아시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추진중이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지난달 7일 일본에서 손 회장을 만나 원전 축소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손 회장의 탈원전 구상을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총선 전에 현 정부의 원전 진흥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당론을 정한 바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정 반대다. 현 정부가 마련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뼈대는 오는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14.9%에서 27.8%로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4%에서 11%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수정해 원자력 비중을 오히려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더 크게 늘려야 한다는 게 민주당과 문 상임고문의 생각이다. 새누리당은 현재의 원전 진흥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은 국가 정책의 근간이자 뼈대"라면서 "민주당이나 문 상임고문의 생각은 사실상 에너지 산업의 골격을 새로 짜자는 것인데, 안 원장이 같은 생각을 나타내 조금 놀랐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민주당 등 야권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에도 공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거나 중병에 걸리면 중산층이라도 어느 순간 빈곤층으로 추락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불안이 공동체의 위기를 낳고 있죠. 그래서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게 보편적 복지의 정신이죠."
"선별적 복지만 고수한다면 부유층과 중산층의 '반(反)복지 동맹'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요…선별적 복지는 또 '낙인효과'를 만들어 사회 통합에 금이 가게 하죠…극빈층 등 긴급한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 대상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강화하고, 동시에 지금부터 보육, 교육, 건강, 주거 등 민생의 핵심 영역에서 중산층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편적 시스템을 사회적 합의와 재정 여건에 맞춰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복지를 늘릴 때 재정 건전성을 함께 생각하는 자세는 꼭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형편에서 좀 늘리자는 얘기를 두고 '재정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요."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일 국회 연구모임 '국가재정연구포럼' 창립총회에 토론자로 참석해 새누리당의 재정ㆍ복지 정책 구상을 '저부담-저혜택'으로, 민주당의 구상을 '중부담-중혜택'으로 규정했다. 여권의 복지구상은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작은정부' 기조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또한 경제민주화의 주요 조건으로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꼽고 "재벌그룹은 사실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이어 "이사회의 구성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구분돼야 하며 경영진에 대한 보상과 감시가 제대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은 그러면서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내부거래 및 편법 상속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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