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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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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경찰은 오지 않았다"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경찰 가정폭력 미흡대처 긴급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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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같이 사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해왔다. 가끔 찾아오는 엄마도, 언니도 몰랐다. 그러나 그 날은 여느 날과 달랐다. 아침부터 밤 열두 시까지 맞았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남자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침부터 맞았는데요, 빨리 좀 와주세요." 집 주소도 전부 알려줬다. 겨우 22초의 통화가 끝난 뒤 남자가 전화 건 사실을 눈치챌까봐 발신번호까지 지워버렸다.

잠시 후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그 전화는 남자가 받았다. 경찰이 물었다. "맞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맞습니까?" 남자는 발뺌했다. 경찰은 '여자가 전화를 걸었다'고도 알려 주었다. A씨는 뒤에서 떨고 있었다. 난 이제 죽었구나,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녀는 결국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지고 요추에 금이 가는 등 중상을 입을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 꼼짝도 못 하고 집 안에 방치된 채 4일이 흘렀다. 그제서야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다가 소식을 들은 A씨 어머니도 급히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딸의 첫 마디는 "엄마, 나 오빠한테 맞아서 경찰한테 112 신고전화했는데 경찰이 확인전화해서 더 맞았어."였다.

"우리가 행복해서 웃는 시간은 열흘이라도 짧게 느껴져요. 하지만 공포 속에 떨고 있는 우리 딸에게 일 초의 시간은 일 년같이 느껴졌을 거예요."


A씨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경찰은 오지도 않았어요."


지난 6월 17일 수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피해자의 신고를 접수한 경기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은 인접 파출소인 행궁파출소에 출동 지령을 내렸지만 파출소 경찰 2명은 출동을 하긴 커녕 신고 발신지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가해자인 남성이 받아 폭력상황이 없다고 답변하자 허위신고 처리를 해 버렸다.


이 사건은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불과 700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신고체계를 개편했다고 자신해 온 경찰측의 부실대응이 또 불거진 것이다. 당시 언론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한 경찰이 피해 여성을 여러차례 찾아와 사건을 은폐해달라고 사정했다. 피해 여성의 대답은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요"였다. 실제로 피해 여성은 죽을 수도 있었다.


경찰의 가정폭력 부실대응은 오래 된 문제다. 경찰의 잘못된 대처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2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경찰의 가정폭력범죄 미흡 대처를 두고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소장은 "경찰이 가정폭력을 사회적 범죄나 인권침해로 인식하기보다 집안일이나 가정사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9월 한국여성의전화에 접수된 사건 중에는 출동한 경찰이 "이 정도는 심한 것이 아니니 아줌마가 참아라"라고 말한 뒤 돌아간 경우도 있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경찰관을 상대로 실시한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은 가정 내 해결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71.6%에 달했다. 피해자인 여성에게도 어느정도의 책임이 존재한다는 문항에 71.1%가 반응을 보인 것도 '맞을 만 하니까 맞았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읽힌다. 피해 여성들 입장에서는 신뢰하기 어렵다. 현장에서의 태도도 이러한 인식에 좌우된다.


가정폭력 사건은 초동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피해여성들은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에 신고를 할 정도면 대개 가정 내 폭력이 상당부분 진행된 상황이라는 얘기다.


고 소장은 "신고행위 자체가 상황이 절박하다는 신호"라며 "경찰은 사건의 경중에 대한 자기판단을 개입시키지 말고 즉시 출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시키는 등 대응 매뉴얼이 확립하고, 경찰의 인식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와 관련법을 경찰대 정규과정에 편성하고 진급시험 주요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제도적 노력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가정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는 Oh&K법률사무소의 오지원 변호사도 경찰의 전문성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가정폭력 관련 규정이 있는 걸 모르고 규정을 알아도 취지를 모른다." 오 변호사는 "가정폭력 대처 현장 실습을 실시하고 이를 통과한 사람만 관련 업무를 하도록 해야 한다"며 "경찰이 늘 인력 부족 등을 이야기하는데 일정 의지와 지식만 있으면 집 밖으로 피해자를 불러 관련 절차를 설명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 정도를 알려 주는 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법 제도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 지금은 가정폭력과 관련해 경찰의 현장출입조사 권한이 없다. 함부러 문을 따고 들어가면 경찰이 징계를 받거나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게 된다.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전문기관의 역할도 법에 명시돼있지 않다. 일례로 아동학대는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법적 권한을 갖고 경찰과 함께 움직이며 아동 보호 등의 역할을 맡는다. 경찰이 출동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고발할 수도 있다. 박상진 경찰청 생활안전국 여성보호계장은 "가정폭력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전문 기관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법에 명시돼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경찰과 기관이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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