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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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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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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구릿빛 피부에 빡빡이 머리. 현장미술가 최병수 화백(사진·남·53)이 호탕한 웃음을 짓는다. 쉰 살이 넘은 중견화가이지만 어린 아이 같은 순수함이 넘친다. 민주화, 노동, 반전 평화, 환경운동 현장을 국내외로 누비며 올곧이 작품만으로 감동과 메시지를 전해왔던 열정과도 닮아있다.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나라 대표 현장미술가다. 미대를 졸업하고 화랑과 시장에 문을 두드리는 정규코스와는 거리가 멀기에 그의 작업세계는 독보적이다. 어릴 적 칼로 깎는 취미가 평생 노동과 예술작품을 병행하게 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보일러공, 목수, 식당보조원, 공사판 잡역부, 중국집 배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왔던 경험도 그의 작가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장산곶매' 같은 걸개그림과 '펭귄이 녹고 있다' 퍼포먼스 작업. '최병수'라는 작가 이름은 기억되지 못해도 이런 작품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외신에서 소개될 만큼 대단했다.

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지난 8일 서울시청광장 한켠에 최 화백의 솟대작품이 솟아올랐다. 서울시의 협동조합 선포식 행사에 맞춰 전남 여수에서 온 상징조형물이었다. 새와 구름을 형상화한 대형 나무 조각 작품으로 한 쌍의 새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새들 아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최 화백은 지난 2005년부터 여수 백야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늦깎이 장가도 갔다. 위암을 얻어 수술 후 요양차 내려간 여수에서 이렇게 둥지를 틀었다.


이날 만난 그가 "새들이 서로 눈을 맞추고 있다. 등 돌리지 않는다. 이게 바로 공존"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번데기 절차가 없는 애벌레, 판화, 최병수 作


◆"'상상력'이 부재한 곳에는 폭력이 있다"..번데기·의자시리즈= 최근 작업들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대뜸 "번데기"라고 했다. 어느 날 문득 번데기를 바라보니, 날개를 얻어 나비가 돼 비상하는 것이 너무 기특하고 신기했다고 한다.


그는 "번데기를 한없이 바라보다 문득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날개를 용접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며 "세상 사람들이 쉽게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 준비 없이 성공하려고 하는데 사람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번데기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고한 번데기와 나비는 솟대로, 판화로 만들어져 백야도 집 근처에 세워지고 동네 아이들의 티셔츠 무늬로 활용됐다.


최 화백은 번데기를 통해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허상을 말하고자 한다. 번데기 과정 없이 애벌레가 바로 날개를 단 부적절한 형태가 '이기심'과 '거짓'을 상징한다. 그는 "'꿩먹고 알먹기'같은 말이 좋아 보이지만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면서 "내가 목수로 집을 지어주듯 농부들은 나를 위해 먹을 것을 제공한다. 공존해야 사는데 쉽게 이익을 취하려는 사고가 바로 날개를 단 애벌레나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의자시리즈는 '의자'에 앉아 일하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착안해 작업 중인 작품들이다. 이 시리즈는 애초에 은행을 영어로 'bank'라고 한 이유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bank는 bench(긴 의자)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banco에서 유래했다. 초기 금융업자의 비품이 곧 책상과 의자였던 것이다. 중세 유럽에선 기독교인들이 고리대금업은 죄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돈이 궁하면 의자에 앉아 돈놀이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름대신 banco라고 부르며 돈을 빌렸다고 한다.

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bank, 설치작품, 최병수


의자 시리즈는 앉아서 일하는 이 시대 현대인의 삶과 자본주의를 되새겨보는 작업들이다. 대다수가 의자에서 일하며 다른 사람을 바라볼 여유 없음을 지적하는 작품들이다. '달리는 의자', '의자인간', '의자생태', '의자시대' 등 그가 살고 있는 백야도에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내년께 공개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최 화백은 "작품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사물을 관찰할 때 기존 상식과 판단들을 다 없애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습관이 있다"면서 "모든 걸 제로베이스로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상상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14일 남해 바다미술제, 25일 여수 국제청소년축제에서도 솟대작품들을 전시한다. 오는 9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열리는 '사회와 미술의 영향관계'라는 주제의 전시를 위해 '이한열 열사' 영정 걸개그림 등을 선보인다.


◆'라면' 대신 '밥'을 먹어요.."자수성가라는 말이 싫다"= 이날 그가 '협동조합'의 상징물로 새, 구름 솟대를 세운 것은 '공존'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는 우리 인생이 절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릴 적부터 잡역부 같은 궂은일을 해오면서 느껴온 일화를 소개했다.


학교 다니기를 그만두고 홀로 살아가기를 작정한 10대 어린 시절 그는 무수히 많은 노동일을 경험했다. 한때 쇠를 이용한 선반 만드는 일을 했었다. 땀 흘려 몸을 써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그는 '건강'을 가장 우선에 뒀다고 한다. 한창 군것질 할 나이에도 밥으로 간식을 대신하자, 사장이 이를 못마땅해 하며 "성공하려면 굶어서 고생도 해봐야 나처럼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최 화백은 "그때 처음으로 '자수성가'란 말이 얼마나 나쁜 말인지 깨달았다. 1980년대 후반 대학생들과 미술운동을 할 때에도 '라면'말고 '밥'을 먹으라고 항상 당부했다"면서 "몸에 나쁜 '라면'이 오히려 부르주아지를 위한 음식이며, 식당에서 차려주는 밥과 반찬은 우리 농부들이 수확한 쌀과 농산물을 섭취하게 해 농민, 노동자를 위한 것이란 게 나의 소신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먹는 음식만큼은 철저히 해로운 것을 피한다.

환경운동가 겸 현장미술가 최병수 "번데기가 되자" 지난 2002년 로이터에서 소개한 요하네스버그 세계포럼에서 '펭귄이 녹고있다' 퍼포먼스 작업을 펼친 최병수 화백


◆ '시장' 아닌 '현장' 미술가 최병수는 어떤 사람? = 화가 최병수를 이해하려면 최 화백이 말하고 평론가이자 공예가인 김진송씨가 옮긴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란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국 미술사에서 걸개그림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도 실려 있을 만큼 빼놓을 수 없는 장르다. 그림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새만금, 매향리, 대추리, 리우데자네이루, 뉴욕, 이스탄불, 이라크 등 수없이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펭귄이 녹고 있다'라는 퍼포먼스가 전 세계 일간지에 나올 정도로 국제적인 환경운동가이자 현장미술가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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