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희게 우거진 길섶에/눈부시는 붉은 금/또아리처럼 그려 놓고/징그럽게 고운 꿈/서리고 앉은 짐승./오오, 아름다운 꿈하!/주검처럼 고요한 동안/내 눈과 네 눈이 마주치는 찰나/징그러운 오뇌를 지녀, 너는/죄스럽게 붉은 한 송이 꽃이어라
윤곤강의 '단사(丹蛇)'중에서
■무등산 자락 단사(丹蛇)마을에 1978년 지산유원지가 생겼다.
유원지가 있는 꼭대기는 풍수지리상 뱀의 머리에 해당해 여기를 파헤치면 큰 재앙이 온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이 공사를 반대했으나 유신정부가 강행해 만든 위락시설이다.
그런데 2년뒤 인근 광주에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으니 저 붉은 뱀이 노한 것일까.
서정주의 '화사'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시 또한 꽃뱀을 다뤘다. 똬리틀고 앉은 모양을 죄스럽게 붉은 꽃으로 표현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꽃뱀과 인간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적막 속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숨막히는 긴장은 압권이다. 성경에 나오는 불뱀스토리가 이쯤에서 떠오른다. 오만한 인간을 물어뜯어 징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보낸 수많은 불뱀들은 분명, 저 단사의 붉은 색을 지녔을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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