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득이는 것이/왜 빛뿐일까요/번득이는 것이/왜 눈뿐일까요/번득이는 것이/왜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햇빛뿐일까요/하늘에 가득 찬 총알 총알 총알/그 구리의 빛은//찢어진 왼쪽 다리 끌며 당신 찾는데(......)가물거리는/마지막 생각/가물거리는 마지막 눈//그 속에 타고 있는/삼화사 촛불/마지막 들리는/삼화사 독경소리/마지막 보이는/삼화사 쇠 부처님/아 아/물방울.
김지하의 '피쏘' 중에서
■ 시라는 게, 곱고 예쁜 것만 담을 순 없다. 오늘은 납량(納凉)으로 가자. 피쏘는 피로 물든 연못(沼)이다. 김지하는 엄혹한 1981년 두타산 무릉계곡에 갔다가 주위에 감도는 섬뜩한 기운들을 느낀다. 1천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는 무릉바위에서 귀신의 흐느낌(鬼哭聲)을 들었다. 두타산엔 7개의 피범벅 구덩이가 있었고 5000명이 한날한시에 총맞아 죽었다고 한다. 피쏘 한 복판에 큰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속에는 한 여자가 지금도 떠 있다는 얘기가 있다. 무시무시하다. 그는 이 피쏘의 참극이 일어나던 현장을 마치 목격한 듯 생생하게 전한다. 환영처럼 보이고 환청처럼 들리는 것들. 다리 찢어진 여인이 남편을 생각하며 마지막 듣는 삼화사 독경소리와 철불(鐵佛). 6.25때 대량학살이 일어난 이곳에서 시인은 이념의 광기와 무자비가 남긴 '흰 그늘'을 보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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