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 두달 | 상생의 대안은 없는가
대형마트들이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는 의무휴일제. 실시한 지 두 달여가 지났는데 전통시장(재래시장), 골목상권은 일단은 조금이나마 살아나고 있는 듯 보인다. 존폐 위기에서 벗어나 반격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반면 여러 가지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정치권은 의무휴일 수를 더 늘릴 태세여서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문제는 중소상인과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실시한 대형마트 규제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원천적 의문이 들고 있다는 점이다.
‘착한 규제’냐 ‘시장 왜곡’이냐의 논란이 뜨겁다. 대형마트 규제가 가져올 소비 침체와 고용 감소 등 부작용에 비해 전통시장이 얻게 될 혜택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일면서 분위기는 한층 가열되고 있다. 성급한 법제화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행법 시행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현재로선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업체들은 민감한 이슈라는 점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끼며 신중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법으로 제정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대형마트와 SSM 이익단체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입법 취지가 대형마트와 SSM 규제로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효과 여부에 대해서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강제 휴무 및 영업시간 규제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4가지다.
첫째,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을 찾게 된다. 둘째는 농협이나 편의점·백화점·온라인 쇼핑몰 등 다른 유통 채널을 이용한다. 셋째,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로 쇼핑 시간대를 변경한다. 넷째 소비를 포기하는 경우 등이다. 특히 소비자가 불편해져 소비 자체가 줄면 이는 대형마트의 매출 감소, 내수 부진 및 경기 침체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결국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대형마트 규제를 더 강화할 것이 아니라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법찾기라는 것이 협회 관계자의 제안인 셈이다.
전통시장 쪽은 일단 혜택을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문을 닫은 대형마트와 인접한 전통시장들은 대부분 고객 수와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그동안 독주해 온 대형 유통업체들의 강제 휴무에 찬성하고 효과가 분명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시장 활성화를 위한 경쟁력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태신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대표는 “정부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딱 죽지 않을 정도만이다”라며 “영세한 시장으로서는 자본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와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중곡제일시장(서울 중곡동 소재)에서 지난해 상반기 도입한 것이 출자금 제도다.
박 대표에 따르면 이곳 시장이 잘 되면 건물 임대료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데 임대보증금까지 합쳐 그 폭은 1년에 약 10%씩이다. 건물 매입을 통해 임대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상인들이 매달 자율적으로 3만원 이상을 거둬 출자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의 출자금 제도 도입은 이제껏 전례가 없다는 평가다.
박 대표는 “시장 운영과 관련한 융자 때, 금리 우대 등 전세금 대출에 따르는 혜택과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리모델링 등 시설을 개선하고 손님들도 많이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외에 독자상표 제품 판매나 중곡시장의 이름을 딴 공동브랜드 제품 출시도 준비 중이다. 더불어 박 대표는 “시장을 잘 경영할 수 있는 인적 자원 양성에 대한 정부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대형 유통업체들과의 상생 논리를 강조했다.
망우동 우림시장 성공사례 눈여겨 볼 만
시설 현대화와 경영 혁신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쇼핑 공간으로 변모 중인 곳은 또 있다. 서울 망우동의 '우림시장'은 손님들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대형마트처럼 쇼핑카트를 마련하고, 반찬과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위생에도 신경 썼다. 일정 금액 이상 물품 구매 시, 상품권을 덤으로 주기도 하는 등 대형마트에 뒤지지 않는 가격 경쟁력과 신선한 상품 질로 승부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지난 2002년부터 주변에 대형마트 2곳과 대형 슈퍼마켓 3곳이 들어섰지만 지속적인 손님 끌기에 성공하면서 다른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다는 분석이다. 매주 수요일마다 대대적 할인 행사는 물론 인근 빌딩 주차장 이용이 가능토록 상가와 골목시장의 상생을 이뤄낸 서울 망원동 ‘망원월드컵시장’ 사례도 꼽을 수 있다.
한편, 상당수의 유통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대형마트 규제 보다는 보완책 마련을 주문한다. 이 중에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역 생산품을 판매, 중소상인 및 생산자들의 유통 판로를 확보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로컬 마트’도 거론된다. 전국에 자리 잡은 점포들을 활용해 그 지역의 특산물 직거래 장터를 제공함으로써 지역민과 상생하는 모델인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마트가 해당된다.
이마트는 2009년부터 ‘생산자 직거래장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이 장터는 생산자가 직접 재배한 채소를 당일 새벽에 수확, 인근 점포에 직배송해 진열·판매하는 방식이다. 중간 유통단계를 대폭 줄이고 물류비 절감 등을 통해 소비자는 20% 이상 저렴한 가격에 상품 구입이 가능하고 지역 농가는 10% 이상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로컬푸드 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미니 인터뷰 |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마녀사냥식 강제규제보단 소비자 편의 최우선 순위 돼야”
대형마트 의무 휴업과 관련해 한쪽의 손해만을 감수하게 한 법안은 후유증을 남긴다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우선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함이 크다. 주말에 쇼핑할 수밖에 없는 500만 가구가 넘는 맞벌이 부부를 포함한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대형마트 매출 감소는 물론이거니와 입점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고 중소 납품 업체들, 농어민 등 1차 산업 종사자들까지도 신선식품 취급 문제, 입고량 감소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으로 상당수의 아르바이트·일용직 인력들이 일터를 잃었다.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고용 감소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대형마트 강제 규제로 인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뒤따르고 있다. 그렇다고 재래시장과 골목 상인들의 살림살이도 나아졌다고는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대형마트 규제 외에 전통시장 활성화, 골목상권 부활을 위한 다른 대안은 없을까.
“한 쪽(대형마트)을 누르면 다른 한 쪽(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를 강제로 문 닫게 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대체 장소를 찾겠느냐, 그렇지 않다. 전통시장을 가지 않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유도한 긍정적 효과도 있긴 하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주말 매출이 올랐다는 조사결과가 보인다. 그러나 그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규제가 과연 정부가 유도하려던 성과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근본적으로 소비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쇼핑과 연관져 재래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 전체 유통시장의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나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단기적인 정책만 밀어붙이지 말자.”
대형마트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전통시장의 선진화가 급선무라는 의견들이 많다.
“요즘 소비자들은 일상이 매우 바쁘기 때문에 필요한 물품을 한꺼번에 마련하려는 서구화된 구매 형태, 원스톱 쇼핑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전통시장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무척 불편하다. 여러 가게를 일일이 다 들러야 하고 주차시설도 없는 데가 많고…. 현행 자정에서 밤 9시로 영업시간 제한을 강화할 경우, 전통시장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젊은 고객들의 장 보는 시간과 기회를 침해할 뿐이다. 국민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것밖에 안 되는 셈이다. 손님들이 편하게 장을 볼 수 있도록 대형마트처럼 쇼핑카트를 비치하고 배달 시스템을 갖춘다거나 카드로 결제하면 상품권을 덤으로 주기도 하는 등 시장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와 경쟁 대상이 아닌, 아예 다른 공간으로의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그러려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취급 품목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다만 경쟁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과 겹치는 일부 품목의 비중을 줄이거나 경영 및 마케팅 노하우, 판촉 전략 등을 공유하고 지원해 전통시장을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대형 유통업체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시장을 적극 지원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생’이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전통시장에서 잘 판매되는 일정 품목을 양보한다거나 예를 들어 현재 일부 시도되고 있는 주차장 공유와 같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윈-윈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대형마트에 대해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만 약간의 규제는 필요하되,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원 정책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후자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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