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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리더學]사람들을 찾아간 원효…사람들이 몰려온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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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리더 2.원효와 의상


원효와 의상은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왕실이나 귀족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발전했던 반면 신라에서는 백성에게까지 두루 불교가 전파돼 호국 신앙으로 발전했다.

원효와 의상은 두 번이나 함께 당나라로 불법을 공부하러 가려고 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둘은 여러 면에서 달랐다. 출신 성분이 달랐고 스님으로서의 수행 방법이 달랐으며 사상과 학문에 대한 태도에도 차이가 있었다.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원효(617~686)
불법의 평등을 주장한 의상(625~702)

[포커스리더學]사람들을 찾아간 원효…사람들이 몰려온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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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불법공부를 하러 가던 중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유학을 포기한다. 원효가 잠결에 목이 말라 표주박에 고여 있는 물을 시원하게 마셨는데 다음 날 날이 밝아서 보니 토굴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무덤 속이었고 표주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해골바가지였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안 원효는 심한 구역질을 하며 일체유심조라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 후 원효는 자신을 소성거사(卜姓居士, 아랫것 중의 아래)라고 낮춰 부르며 백성에게 부처님 말씀을 알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애썼다.


말과 행동이 거칠었던 원효는 많은 구설이 뒤따랐다. 절이 아닌 여염집에서 자고 광대들이 쓰는 칼과 봉으로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술집과 창녀집을 드나드는 등 파계승과 같은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백성과 스스럼없이 어울렸고 그 과정에서 불법을 전파했다. 덕분에 백성도 '부처'를 알게 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불심을 키울 수 있었다.


의상은 젊은 시절 원효와 함께 고구려의 보덕 스님 등에게 가르침을 받고 당나라로 건너가서는 화엄 사상의 대가인 지엄 스님 밑에 들어갔다. 지엄 스님이 입적한 후에는 그의 뒤를 이어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화엄 사상 연구에 정진했다.


의상이 당나라에 머문 기간은 10여 년쯤이다. 그 동안 한반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는 한반도에 들어 와 있는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했다. 귀국 후 의상은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며 많은 절을 지어 불법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기에 힘썼다. 그는 백성에게 불법을 가르치기보다 제자들의 교육에 더 힘썼다. 의상의 밑에는 3000여 명의 제자가 있었고 이들이 화엄종이란 큰 교단을 형성했기에 그를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라고 한다. 반면 원효는 교단을 통한 가르침보다 대중 교화에 더 힘썼던 까닭에 그의 제자들이 의상처럼 큰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여인에 대한 태도 또한 달랐다. 원효가 과부였던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을 낳은 일은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다. 의상에게도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선묘는 의상이 처음 당나라 양주에 도착해서 머물었던 양주성 주장(州將)의 딸이다. 그녀는 한 눈에 의상에게 반해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불법을 공부하러 온 의상의 굳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10년 사랑이 무위로 끝나고 의상이 신라로 돌아가게 되자 선묘는 바다에 투신, 용이 돼 의상의 뱃길을 보호한다. 또 의상이 귀국한 후에도 용이 된 선묘가 여러가지 신통력을 발휘해서 의상을 돕는 일화를 남겼다.


만일 원효와 의상이 세속적인 라이벌이었다면 자신과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상대방을 서로 비난하며 내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효와 의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좋은 벗이었고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부족한 것을 상대방에게서 배웠다.


원효는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그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조금 들은 좁은 의견을 내세워 거기에 따르면 좋다고 하고, 반대하면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면 좋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을 보지 못하는 자라고 말한다."


의상의 화엄사상도 우주 만물이 대립하는 것이 아닌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가르침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하나라고 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족한 것을 상대방에게서 배우며 함께 넓고 깊은 부처님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흔히 라이벌이 있으면 불편해 한다. 또 라이벌에 대해서 부담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한 일이다. 맞서는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며, 노력함으로써 더 큰 발전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다.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다할지라도,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고, 부족한 것을 상대방에게서 배우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함께 더 큰 발전을 이룩한다면, 그래서 함께 승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창조적인 라이벌 관계다. 원효와 의상의 삶에서 그러한 본보기를 볼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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