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적 없는 심사위원의 등장이다. 대한민국 ‘식문화의 아이콘’이 될 아마추어 요리사를 찾는 서바이벌 오디션 올리브 <마스터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건, 김소희 셰프의 존재감이다. 그는 장난스러운 태도로 오디션에 참가한 사유리에게는 “사람들을 당기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음식”이라고, 오리를 훈제한 온도가 몇 도인지 모른다고 답한 도전자에게는 “요리는 정직하고 자기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소희 셰프에게 냉철한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마셰코>에 도전했다며 계속 눈물을 흘리는 도전자에게는 “그렇게 울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래요?”라 말하며 걱정스런 표정을 내비쳤다. 요리의 기술보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독설을 위한 독설보다는 인간적인 조언을 지향하는 셈이다. “<마셰코>의 도전자들은 제한된 시간과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의 완성도나 기술적인 실수는 당연하다고 봐요. 그래서 요리를 하는 마음가짐이나 순수한 열정,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가합니다.”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레스토랑 ‘킴 코흐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소희 셰프지만, 처음부터 그가 요리사의 길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도중 “감성과 감각이 다른 한국여자가 당시의 유럽 패션계에서 일등이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여 과감히 마음을 접었고, 동시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음식 장사를 하면 굶지는 않는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농담 같은 조언”은 요리를 시작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물론,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뛰어든 만큼 고생은 예견된 것이었다. “생선 손질하는 걸 익히기 위해서 며칠 밤을 계속 생선만 잘랐어요. 칼을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으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죠. 그다음엔 새로운 레스토랑이나 맛있다는 음식을 찾아가 무조건 먹었어요. 하루에 열두 끼를 먹기도 했습니다.” 김소희 셰프가 쌈과 비빔밥 등 한식을 주메뉴로 삼으면서도 현지인들의 입맛을 성공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요리를 시작한 순간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고, “힘든 줄 모르고 앞을 향해 달려 지금까지 왔다”는 그가 클래식한 멋이 있는 음악들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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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수록된 <101 Classics, Vol.1: The Great Waltzes>
김소희 셰프가 첫 번째로 추천한 곡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이라면 다 골고루 듣긴 하지만, 특히 이건 제가 세계 어디에서 신년을 맞이하든 꼭 듣는 곡이에요. 음원을 아이패드에 넣고 다니면서 듣습니다.” 이 곡은 ‘왈츠의 왕’이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42세 때 작곡한 것으로, 오스트리아에 흐르는 도나우 강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매년 1월 1일 신년음악회의 앵콜곡으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연주한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카알 베크의 시 중 “괴로움 많은 그대여, 그대는 젊고 다정하구나. 금광의 황금처럼. 거기에는 진실이 되살아난다. 도나우 강변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변에...”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Nina Simone의 < Very Best Of Nina Simone >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이 작품의 OST가 오스트리아의 음악 차트 상위권에 계속 랭크됐었는데, 저는 그 중 ‘Feeling Good’이 가장 좋았습니다.” 남성적인 톤에 더 가까운 Nina Simone의 보컬은 무심한 듯 음울하다. 듣는 순간 어두운 재즈바의 나른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이 곡은,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 드리스(오마 사이)와 필립(프랑수아 클루제)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면 위에 잔잔하게 드리워진다. 미국 HBO의 인기 TV 시리즈 < Six Feet Under >의 OST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뮤즈가 재해석한 버전은 영국의 음악 전문지 <토털 기타>가 뽑은 최고의 리메이크곡 톱 5에 오른 바 있다.
3. Earth, Wind & Fire의 < Eternal Dance >
김소희 셰프가 세 번째로 추천한 Earth, Wind&Fire의 ‘September’ 역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에 사용되며 다시금 주목을 받은 곡이다. 흥겨운 리듬과 힘을 뺀 보컬은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또한 ‘Ba de ya - say do you remember / Ba de ya - dancing in September / Ba de ya- never was a cloudy day’(기억한다고 말해주세요, 함께 춤추던 9월에는 근심 걱정 없는 나날들이었다고)라는 후렴구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2005년 일본의 토키 아사코가 재즈 팝 풍으로 리메이크했으며,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4.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 수록된 <영화를 빛낸 클래식 1>
“모차르트의 곡들을 특히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이 곡은 모차르트스러운 느낌이 잘 살아있는 것 같아요.” 김소희 셰프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세 번째로 추천했다. 모차르트는 총 21곡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중 <피가로의 결혼>은 <돈 조반니>, <마술피리>와 더불어 3대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오페라의 문을 여는 곡이 바로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다. 힘차고 익살스러우며 거침없기까지 한 선율은 마음을 절로 들뜨게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듯 빠르게 질주하는 현악기의 흐름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해피엔딩으로 흘러갈 것임을 암시한다. 비록 곡 전체의 길이는 짧지만 특유의 경쾌함 덕분에 각종 연주회에서 프로그램의 서두에 배치되는 일이 잦고, 오페라와 분리해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5. 한충은의 < Morning >
김소희 셰프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곡은 한충은의 ‘어딘가로 부는 바람’이다. “대금 소리가 들어 있는 곡은 대부분 다 좋아합니다. 음색이 굉장히 단아하고 청아하거든요.” 한충은은 국악과 재즈를 결합해 특색 있는 퓨전 음악을 선보이는 대금 연주자다. ‘어딘가로 부는 바람’ 역시 전통적인 국악이 아니라 피아노와 대금, 타악기들이 어우러져 재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반부까지는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듯한 바람 소리와 피아노 연주에 대금의 차분한 연주가 얹혀 서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 이후로는 타악기가 중심 리듬을 잡아주며 흥겨움을 더한다. 한여름, 녹음이 짙은 곳에서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느끼기에 딱 알맞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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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코>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은 김소희 셰프에게 자극이 된다. “우승자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도전 자체를 즐겨요. 요리사인 제가 봐도 난감한 미션들이 계속 나오는데, 나름의 방법대로 풀어가는 도전자들의 모습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마셰코>에 출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김소희 셰프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요리의 순수한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서로 끊임없이 기분 좋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요리사에게 있어 소중한 경험일 테니. “셰프에게 새로운 식재료, 새로운 맛의 경험은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소희 셰프는, 어쩌면 <마셰코>를 통해 여행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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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황효진 기자 seven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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