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한 젊은이에게 3명의 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는 진정한 친구, 두 번째는 친하지만 절친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한 명은 친구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젊은이가 왕의 호출을 받아 왕궁에 불려가게 됐다. 본인이 큰 처벌을 받을 것을 직감한 그는 진정한 친구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 당했다. 두 번째 친구는 같이는 가겠지만 왕궁 앞까지만 가겠다며 한발 뺐다. 어쩔 수 없이 친하지도 않다고 여겼던 세 번째 친구를 찾아가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난 자네가 아무 나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네. 당연히 같이 가야지."
여기서 왕궁은 죽음을 뜻하고 첫 번째 친구는 재산, 두 번째 친구는 친척, 그리고 기꺼이 동행을 자청한 세 번째 친구는 '선행'을 의미한다고 한다. 유태민족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죽음까지 함께할, 그리고 사후(死後)에도 영원히 남아 있을 친구는 돈도 친척도 아닌 '선행'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유태인은 세계 경제의 핵이다. 미국 최상위 부호 400가구 가운데 23%가, 세계적인 백만장자 중에도 20%가 유태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은 토지소유의 길이 막히고 수많은 박해와 제약을 받다보니 돈에 대한 집착과 상술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을 터다.
돈에 대한 집착이 이렇듯 강하지만 유태인 사상의 집대성인 탈무드는 '아무리 부자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맛있는 요리에 소금이 없는 것과 같다' '촛불은 다른 많은 초에 불을 나누어 붙여도 처음의 빛이 약해지지 않는다' 등 선행과 사회공헌에 대한 많은 격언을 담고 있다. 버는 것만큼 올바로 쓰는 데도 결코 소홀하지 않은 셈이다.
국내무대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5대 증권사가 작년 4~12월 국내서 2000억원이 넘는 돈을 벌고도 기부금은 겨우 650만원을 냈다.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씨티 등 3곳은 아예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들이니 한국이 아니라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 사회공헌을 했을지 모르겠다고 위안을 삼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땅에서 장사를 해서 벌어놓고 한국민을 위한 기부가 전무(全無)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
국내 증권사도 이들보다는 훨씬 큰 규모를 사회공헌에 쓰고 있지만 삼성증권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그 규모가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금융권의 사회공헌활동이 미약하다고 지적할 정도라니 말이다. 특히 최근에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보험들기용으로 일부 증권사가 사회공헌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는 판이니 여의도를 점령하고 있는 증권사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 얼마나 차가운지 느껴진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호실적으로 보너스를 받았다는 뉴스에는 국민들이 '부럽다'며 시샘하는 정도지만 증권맨이 고액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소식에는 투자자들이 '내 돈을 뺏긴 것 같다'는 일종의 분노감을 느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세상에 더러운 돈은 없다. 하지만 더럽게 쓰는 돈은 있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내 뱃속 채우기에만 쓰는 돈이 바로 그렇다.
'월가 점령시위'를 차치하고 이제 여의도 증권가도 투자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다. 공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sympathy'는 '고통을 함께 겪다(soun pathein)'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주가는 급락하고 거래는 지지부진해 증권사 먹고살기도 빠듯한 판에 사회공헌, 기부, 자선 이야기를 꺼내면 온갖 지청구가 쏟아질 수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일수록 여의도 증권가는 국민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공감대를 더 빠르게 형성할 수 있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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