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지방도시에 등장한 '얼굴없는 천사'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독일 지방의 작은 공업도시 브라운슈바이크. 이곳의 한 지역신문 직원은 출근길 신문사 우편함에서 2000유로(약 300만원)가 든 돈봉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봉투 속에는 전날 보도된 가난한 아르헨티나 소년의 사연을 전한 신문기사가 함께 들어 있었다. 돈을 두고 간 사람이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왜 우편함에 돈봉투를 가져다 두었는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이따금 몰래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도시의 '이름 없는 천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25일 교민신문 베를린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독일 중북부 도시 브라운슈바이크에 등장한 익명의 기부자의 선행이 6개월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교회 우편함에, 성경책 맨 뒷장에, 현관문 신발매트 밑에서 발견되는 이 익명의 돈봉투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에게, 수영장에서 사고 후 장애인이 된 소년에게, 멀리 아르헨티나에 사는 노숙자 소년에게 전해졌다. 지금까지 그 금액만 20만유로(약 3억원)에 이른다.
지역 주민들은 이 익명의 기부자를 '현대판 로빈후드', '천사' 등의 애칭으로 부르면서도 그의 신분에 대해 사뭇 궁금해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유산을 물려줄 상속인이 없는 부자라거나 거액의 복권 당첨과 같은 횡재를 만난 김에 선행을 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마피아일 것이다', '누군가 검은(불법적인) 돈을 이런 식으로 없애고 있다'는 등과 같은 '음모론'도 제기되지만 현지 경찰은 범죄자라면 폐쇄회로(CC) TV 등을 통해 금방 탄로날 수 있는 이런 서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익명의 기부자에 대해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가 지역신문인 '브라운슈바이거 자이퉁' 의 독자라는 점.
매번 돈봉투 속에는 기부금을 이곳에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듯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연이 실린 신문 기사 하나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거 자이퉁은 얼굴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기부자의 의사를 존중, 신원을 추적하지는 않기로 했다.
베를린리포트는 이 지역 한 목사의 말을 빌려 현지 시민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시민들이 신문에서 기사들 사이에 간간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짧은 기사를 읽을 수 있는 것 외에는. 그리고 성금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져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도 기부하겠습니다'라는 전화를 받습니다."
조인경 기자 i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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