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아래에 두고, 추진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프로펠러를 물에 잠기도록 한 채 운항한다. 그러나 짐을 내리고 나면 물에 잠긴 프로펠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짐 대신 탱크에 물을 채워 무게를 유지하는데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물을 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평형수는 항구나 주변 연안수를 직접 사용하기 때문에 수중생물은 평형수 탱크에 실려 항로를 따라 이동한다. 평형수를 실을 때 어패류의 성체와 같은 큰 생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취수 파이프에 6~7mm의 그물망을 설치한다. 그렇더라도 6~7mm 미만의 작은 홍합의 유생이나 작은 생물이 유입될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배에 짐을 싣기 위해 다시 평형수를 배출한다. 이때 외래 수중생물이 목적지 항만으로 들어와 그 지역의 토착생물들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
대부분의 외래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지만 살아남은 종들은 강한 생존력과 번식력으로 항만이나 연안 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시킬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0억t 이상의 평형수가 운송되고 있으므로, 평형수로 1만종 이상의 외래 해양생물체나 병원체가 이동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79종의 수중생물 침입으로 총 970억 달러의 피해가 생긴 적이 있으며, 호주는 1998년 검은줄무늬담치로 약 1,800억원 규모의 진주양식장이 폐허가 됐고, 호주 연안해역에 없던 유독 와편모조류 종(Gymnodinium catenatum)이 아시아 지역에서 실은 평형수를 통해 들어와 양식어장에 심각한 피해가 생기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950년대부터 지중해가 원산지인 지중해 담치나, 유입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외래종 따개비 등이 왕성한 번식력과 공간 경쟁력으로 토종 홍합이나 따개비의 서식지를 잠식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와 생태계 교란을 줄이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MO) 환경보호위원회(MEPC)가 선박 평형수 관리협약을 만들어 2004년에 채택했다. 협약 주요 내용은 선박 평형수를 통한 유해 수중생물의 이동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선박 평형수를 살균 처리해서 배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선박 평형수 관리 시스템'이라고 하며 오는 2017년부터는 모든 선박에 장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선박 평형수 관리 시스템'으로는 40여개 제품이 개발되고 있으며 IMO가 최종 승인한 것이 25개 제품이다.
이 중 우리나라 제품은 9개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보유국이 됐다.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과 지난해 2월 선박 평형수 관리법과 시행령을 제정하는 등 국제협약 발효에 대비해 왔다.
한국해양연구원은 지난달 선박평형수센터를 설치해 선박 평형수 통제와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선박평형수센터는 '선박 평형수 관리 시스템'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 주도하의 선박 평형수 시험 설비를 구축(8월 완공 예정)해 선박 평형수 관련 산업의 실증화를 주도할 계획이다. 선박 평형수가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을 진단하고 관리체계를 확립하여 연안 생태계 보호 및 선박 평형수 이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도 수행할 것이다.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 발효에 대비한 14개 지침서를 이행할 수 있는 기반 연구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연안생태계 보호와 관리를 위해 해당 분야의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깨끗하고 건강한 해양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경순 해양연구원 선박평형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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